미국14 영화 리뷰 [포드 V 페라리] : 공을 끝까지 봐야할 때 중심이 잡아주는 것들 결정적인 순간은 늘 마지막까지 내몰렸을 때 온다. 레이싱을 좋아하고 잘하지만 돈 버는 능력은 별로였던 주인공 켄의 정비소에 차압딱지가 붙는다. 좋았던 건, 그것에 대해 켄과 그의 아내는 그렇게 비통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그린 것일까, 그냥 돈을 벌 다른 방법을 알아보면 되는 것처럼 군다. 심각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일은 아니다. 물론 정비소는 넘어갔고, 다른 정비소에 직원으로 일해야 하지만 그게 뭐 별거일까, 켄 특유의 다혈질적인 분노가 여기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점이 인상적이다. 쉽게 화낼 수 있는 사람이 그의 아내 앞에서는 온순해진다. 아마도 그녀에게 잘 보이는 것이 그의 인생에 중요한 중심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이 든다. 그의 아내를 보면 이 생각이 꽤 설.. 2023. 4. 22. 영화 리뷰 [조 블랙의 사랑] : 존재의 이유 빌의 눈빛 주인공 빌은 자신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 조가 자신의 딸과 사랑에 빠져 그녀를 데리러 가겠다고 말하자 분노한다. 조가 데려간다는 것은 죽음을 뜻한다. 어느 아빠가 딸을 죽게 한다는 말에 분노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빌은 이내 평정심을 찾고 조를 설득한다. 사랑에 빠진 조는 설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가 빌에게 자신의 계획을 얘기한 것은 합의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통보였다. 빌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단 한 번의 포기나 절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 보여주는 분노 역시 그의 통제 하에 있었다. 어떻게든 자신의 소중한 것을 뺏기지 않으려는 강한 투지가 있었다. 그것은 조급함보다 노련함으로 정리되어, 치기 어린 고집의 조를 끝내 설득시킬 수가 있었다. 빌은.. 2023. 4. 16. 영화 리뷰 [버니 메이도프] : 가면의 앞과 뒤 영화(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끝나고 난 이후에도 찝찝한 기분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사기의 끝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 끝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아마 당시의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어떤 식으로든 지금까지 그 사기가 이어져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더 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특히 위기가 있을 때마다 피해자의 수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 피해 규모는 훨씬 더 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사기의 규모가 커지고 커져서 만약 나도 '버니 메이도프'라는 투자회사에 대해 알게 됐다면, 과연 나는 그것이 사기인지 구분할 수 있었을까라고 질문했을 때, 내가 내릴.. 2023. 3. 20. 영화 리뷰 [쓰리 빌보드] : 상처에 대한 이야기 상처가 남긴 것 우리가 날카로운 이유는 대개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내가 얼마나 약한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고는 예기치 못하게 터지고, 발가벗겨진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이 상처로 남는다. 그리고 한 번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 그것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어 그다음부터는 나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힌다. 비슷한 경우를 겪을 때면 온통 그 생각만 난다. 나를 두꺼운 갑옷으로 꽁꽁 싸매고, 더 이상 상처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접촉을 거부하게 된다. 안전할 수는 있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마음이 안타까운 것은 그것이 강한 선입견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부터 그것은 이럴 거야 하고 결론지어버리는 것이다. 처음에 아무런.. 2023. 2. 3.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