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 잡아주는 것들
결정적인 순간은 늘 마지막까지 내몰렸을 때 온다. 레이싱을 좋아하고 잘하지만 돈 버는 능력은 별로였던 주인공 켄의 정비소에 차압딱지가 붙는다. 좋았던 건, 그것에 대해 켄과 그의 아내는 그렇게 비통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그린 것일까, 그냥 돈을 벌 다른 방법을 알아보면 되는 것처럼 군다. 심각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일은 아니다. 물론 정비소는 넘어갔고, 다른 정비소에 직원으로 일해야 하지만 그게 뭐 별거일까, 켄 특유의 다혈질적인 분노가 여기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점이 인상적이다. 쉽게 화낼 수 있는 사람이 그의 아내 앞에서는 온순해진다. 아마도 그녀에게 잘 보이는 것이 그의 인생에 중요한 중심이었나 보다 하고 생각이 든다. 그의 아내를 보면 이 생각이 꽤 설득력이 있다. 안정된 눈빛과 말투, 남편에 대한 신뢰가 느껴진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는 눈빛을 받는 사람에게 최고는 아니더라도 일단 해결책을 구할 수 없는 것이 뭐가 있을까.
켄의 운은 이렇게 훌륭한 아내를 만난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친구 셸비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의 주변에는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을까. 아마도 다혈질적인 그의 분노와 발작을 이겨낼 만한 그만의 매력이 있음에 분명하다. 아내와 절친과 손발이 잘 맞는 팀이 있다면 어떤 것이 두려울까 싶다. 각자 자기의 한몫을 해내는 사람들의 모임은 언제나 아름답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시너지는 놀랍다. 경쟁이 아니라 생각이 합쳐지고, 어떤 문제는 어떤 이가 해결하도록 믿고 내버려 두는 조직은 마치 생기 있게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 같은 느낌이 든다. 기업의 본질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이브한 것일까. 사람이 많아지고 조직이 복잡해지면, 이러한 자발적인, 자생적인 시너지는 기대하기 힘든 것일까.
적어도 포드라는 대기업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는 달라 보였다.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 타인을 이겨야 하는 조직이다. 사실 포드의 방식이 더 나은지, 셸비와 켄 팀의 방식이 더 나은지 평가는 어떤 것에 중점을 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느 것 하나가 반드시 더 나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느 쪽의 멤버들이 더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아마 후자일 것 같다. 물론 이 행복이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과 지속가능하게 조직을 유지해 나갈 힘이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셸비와 켄의 팀에는 포드의 지원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포드에서는 경쟁을 통해, 거기서의 승리를 통해 자기완성의 느낌, 행복의 느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결국 각각의 조직에는 각각의 역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인 순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결정적인 순간은 늘 마지막까지 내몰렸을 때 온다. 레이싱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주변의 간섭 때문에 친구를 버려야 했던 이후에, 그리고 다 이긴 게임이라고 긴장을 풀었을 때.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기 직전, 주변에 휘둘려 내 것을 지키지 못했던 순간, 잘 될 거라 확신하고 방심하는 순간, 그때 기운이 바뀐다. 대개 이런 시간들은 많은 생각과 노력들이 응축되어 있는 시간을 바로 지나 이제 생각을 바꿔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순간이거나 그 직전의 순간들이다. 바로 이때 어떤 것들이 찾아온다. 그것은 기회일 때도 있고, 실패나 실망일 때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마지막 순간에, 정말 마지막 순간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거나 나를 덮쳐버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끝까지 그동안의 노력의 끈을, 힘들지만 잡고 있으면서 버티고 있어야 한다. 끝까지 눈을 떼지 말고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리듬에 몸을 맡기기 전에
테니스에서 기본 중에 기본은 공을 끝까지 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친 공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혹은 상대방의 동태를 빨리 살피기 위해 공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눈을 돌린다. 공이 자신의 라켓에 맞을 때까지 보는 것이 공을 끝까지 보는 것이다. 페더러의 스윙 동작을 슬로우로 보면 놀라울 정도로 공을 끝까지 본다. 심지어 공이 라켓에 맞아 떠났음에도 아직 시선이 공 근처에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공을 끝까지 봐도 되는데, 그러지를 못한다. 자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에 현재에 집중을 못한다.
어떤 것은 미리 예견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때가 있다. 괜히 걱정만 앞서고, 그러면 뭔가를 할 때 내 페이스(pace)를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끝까지 몰랐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그 상황에 맞춰서 대처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그동안 내가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고, 나의 페이스를 적절히 유지했다면 말이다. 그리고 나의 페이스를 적절히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동작이 바로 공을 끝까지 보는 것이다. 왜냐면 결정적인 순간은 늘 마지막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일어나는 결정적인 순간이 모든 것을 바꿀 만큼 힘이 있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 공을 끝까지 보고 내가 원하는 데로 쳤다면, 그다음부터는 일어나는 상황에 나를 맡길 일이다. 재즈 음악가의 즉흥 연주(improvising) 같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리듬에 몸을 맡길 일이다. 그때 만약 나를 믿어주는 사람과 내가 믿는 팀이 주변에 있다면 더 마음 놓고 리듬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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