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14 영화 리뷰 [더 웨일] : 삶이 무너져 내린다고 느껴질 때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더 이상 나아질 게 없고 안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때가 되면 그동안 숨겨 왔던 내 모든 단점과 미래에 대안 불안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앞으로 나가는 단 한 걸음을 내딛기가 힘들어 보일 때, 이제 나에게 희망은 없다고 느껴질 때. 영화의 주인공 찰리는 그런 시간을 맞고 있다. 삶이 무너질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 나에게 전부였던 사람을 잃게 되면 내 많은 것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과 생각들이, 내 안에 있던 그 많은 것들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을 잃으면 그 사람과 함께한 기억 속에 있는 나를, 그 사람 이전의 나와 구분하기가 힘이 들다. 그래서 그걸 빼고 나면 원래 .. 2023. 9. 29. 영화 리뷰 [드라이브] : 루틴이 깨질 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루틴을 깰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행운이다. 생활에 루틴을 갖는다는 건 일종의 자동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거다.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설정해 놓으면, 그걸 습관으로 만들어 놓으면, 그 행위를 하는 데 있어 나태해지지 않을 수 있고, 큰 노력 없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보통 루틴을 만들기 전에 문제가 될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생각해 보고 나온 결론을 루틴에 적용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틴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자동화 시스템은 효율적이고 편리하다. 특히 이 시스템을 쓰는 사람의 성격이 예외를 싫어하고, 습관을 잘 만들며, 반복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기보다 안정감을 느끼는 경우에는 말이다. 내 주변 많은 사람들.. 2023. 5. 21. 영화 리뷰 [여인의 향기] : 진실성의 진실 주인공 슬레이드(알 파치노)는 '조 블랙의 사랑'의 빌(앤서니 홉킨스)만큼이나 강한 목소리와 눈빛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내면은 그렇게 안정적이지가 않다. 오히려 불안하고, 이제 끝을 보고 있다. 어떤 면에서 그는 많은 지혜를 가졌지만, 그것을 굵고 힘 있는 목소리로 발사하는 것만큼 스스로 가치 있게 느끼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때론 남들에게 훌륭한 말이, 그 말을 하는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것들이어서 그다지 별로 의미 있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은 주변에서 발견해 주고, 세상의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찰리가 슬레이드에게 그 빛을 가져다주는 도움이었다. 빛이 사라져 가는 점 누군가의 말처럼 슬레이드는 그의 젊은 시절에, 전성 시절에 꽤 망나니였던 것 같다.. 2023. 5. 7. 영화리뷰 [데몰리션] : 감정의 시차 어떤 일과 그에 대한 감정이 늘 동시에 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둘 사이에 시차가 좀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데이비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처음에는 그가 아내를 많이 사랑하지 않아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랑하지 않더라도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낸 사람에 대한 상실감은 있을 법 한데, 그마저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뭔가 마비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싫어하는 어떤 일이 일어났음에도 그 감정이 바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직 그게 내 삶에 충분히 와닿지 않아서이다. 누군가 떠나는 건 알겠는데, 아직 내 삶은 그 부재를 충분히 못 느끼고 있다. 어떤 것이든 직접 경험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로서는 '부재'라는 단어가 어떤 느낌을 주진 않는다. 그보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아 이제 정말 없구나'.. 2023. 4. 30.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