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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피아니스트의 전설] : 한 걸음의 무게 한 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거기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 영화의 시작은 여기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배에서 내리지 못한다.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배 밖으로 가까이 보이는 항구에 대한 두려움은 어쩌면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나를 발견하는 과정 주인공 나인틴헌드레드는 배와 육지를 연결하는 계단의 중간에 멈춰 멀리 육지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후 다시 배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는 결국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버리지 못했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틀을 깨지 못했다.. 2023. 1. 18.
영화 리뷰 [시티 오브 갓] : 신이 버린 도시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나는 자라면서 남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한 적은 없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말이다. 시티 오브 갓은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 파벨라의 별명이다. 신의 도시라는 이름의 이곳은 역설적이게도 신이 버린 도시 같은 느낌이 든다. 정의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사치인 곳. 그보다 눈앞의 생존을 힘들게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곳이 시티 오브 갓이다. 사회 부적응자 시티 오브 갓에서 가장 현명한 결심은 어떻게든 그곳을 떠나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익숙한 가난, 폭력, 살인은 이 상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 이 상황을 벗어날 수나 있을지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밖에 있는 우리의 눈에는 그 안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한.. 2023. 1. 17.
영화 리뷰 [무간도] : 반복되는 죽음들 선택과 책임 그리고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인물들의 긴장 관계 속에 잘 그려졌다. 어떻게 살기로 선택하는 순간, 이미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 결정 중 어떤 것은 후회가 돼서 번복하고 싶다면, 거기에 따른 대가는 엄청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는 그 대가를 지옥이라 말한다. 두 번의 선택 어떤 선택은 어떻게 하게 됐는지를 돌이켜보면 이성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관련된 이유를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그중 효용가치가 가장 높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우리는 보통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어렸을 적, 주인공 진영과 영인은 두 번의 선택을 하게 된다. 처음 선택은 원래 그들이 몸 담기로 했던 조직에 있기로 한 선택이다. 자발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유는 사명감, 반항심, 지인의 추.. 2023. 1. 16.
영화 리뷰 [도그빌] : 개들이 사는 마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2003년 작. 작고 단순한 이야기 구조이지만, 연극적인 환경 연출, 인물들의 예민한 관계 설정, 그리고 적확한 어휘 사용을 통한 상황과 관계에 대한 비꼼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다 보기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제목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감독은 처음부터 많은 것에 대해서 꽤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아래는 영화 이후에도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단어들이다. 도그빌, 그레이스, 실례, 오만함, 본능, 약함, 권력, 심판, 책임 ‘실례’, 연극무대 그리고 권력관계의 형성 ‘실례(illustration)’라는 단어는 영화의 초반부터 등장한다. 누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저런 단어를 쓸까.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끝날 때쯤 이 모든 것들은 주인공 그레이스를 위한, 혹은 .. 2023.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