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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무간도] : 반복되는 죽음들

by 리질리언스 2023. 1. 16.

선택과 책임 그리고 시간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인물들의 긴장 관계 속에 잘 그려졌다. 어떻게 살기로 선택하는 순간, 이미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그리고 그 결정 중 어떤 것은 후회가 돼서 번복하고 싶다면, 거기에 따른 대가는 엄청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는 그 대가를 지옥이라 말한다.


두 번의 선택

어떤 선택은 어떻게 하게 됐는지를 돌이켜보면 이성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관련된 이유를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그중 효용가치가 가장 높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우리는 보통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다. 어렸을 적, 주인공 진영과 영인은 두 번의 선택을 하게 된다. 처음 선택은 원래 그들이 몸 담기로 했던 조직에 있기로 한 선택이다. 자발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유는 사명감, 반항심, 지인의 추천, 사회적인 평판, 다양한 것이 될 수 있다. 주변의 영향이 있을지언정 그 영향들을 고려해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다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얼마나 객관적으로 따졌는지는 모르지만, 각자 삶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의 효용가치는 따졌을 것이다.

두 번째 선택은 각자의 조직에서 자신들을 상대 조직에 스파이로 보낼 때 이루어진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가면 대략 어떤 상황일지에 대해서는 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사실 이 선택은 진영과 영인의 상황에서 거부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떠밀려서 한 선택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보다 나은 선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굉장히 위험한 결정임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그만큼 매력이 있었다. 남들과 구분되는 삶이고, 그들이 감수하는 위험이 충분히 의미가 있어 보였다. 그것은 각자의 조직을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이제까지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는 것,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을 뜻했다.



변화, 새로운 나

위험은 여기에 있다. 다른 나로 사는 것. 우리는 대개 이전 선택과의 연장선 상에 있는 선택을 할 때 안전하게 느낀다. 이미 해보았던 일, 상황, 익숙한 습관과 언어에 안전함을 느낀다. 나에 대한 주변의 예상가능한 기대 역시 마찬가지다. 성장하면서 변화는 꾸준히 일어나야겠지만 변화에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 즉 너무 많은 변화에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이러다 나를 잃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완전히 다른 내가 되기로 했으므로, 진영과 영인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간다. 이는 이전의 자신에 대한 파괴인데, 그들이 선택된 이유는 이렇게 파괴할 과거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 속에서도 그랬을까. 그들은 20여 년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철저히 파괴하며, 이제까지의 선택에 반하는 자신을 만들어낸다. 그것도 아주 철저한 방식으로 말이다. 행여 이 파괴의 과정이 완벽하지 않으면 그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혼란, 두 개의 죽음과 그 사이

사실 처음의 선택에 반하는 선택을 하는 것부터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진영과 영인은 과거의 그들을 죽여야만 현재의 그들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과거의 자신을 충분히 죽이지 못한다면 그들은 다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들에게 죽음은 너무나도 선명하고 가까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들의 작은 행동 하나에도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행여나 작은 실수 하나도 하지 않길 바란다.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그들이 어떤 삶을 살더라도 말이다.

진영과 영인,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비와 변화는 어느 쪽이 옳은지에 대한 경계를 지워버렸다. 옳은 뜻을 가지고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삶과 옳지 않은 뜻을 가지고 옳은 행동을 하는 삶 중 무엇이 더 나을까.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모두, 과거와 현재, 첫 번째 선택과 두 번째 선택 사이의 갈등과 고민이 묻어있다. 모든 것이 뒤엉켜 있고, 어느 것 하나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은 없다. 총량을 따져본다면 두 인물의 가치나 옳음의 정도는 비슷할 수도 있다. 결과적인 옳음을 행하기 위해 자행되는 수많은 불법행위들이, 결과적으로 사회의 큰 악을 키우지만 그 보다 작은 악들을 처단할 수 있는 효율성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흐려진 경계 그리고 죽음을 각오한 선택

과거의 자신을 철저히 죽인 이후 탄생한 현재 모습이 그토록 불안한 이유는, 그것 역시 그들이 바라는 미래와 다시 상반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지금의 나로 살기 위해, 내 주변의 관계를 만들어버렸고, 진심으로 만들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흉내내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 역시 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온 동료 옆에서, 미래의 언젠가 그들을 배반할 생각을 가슴속에 품고 있다. ‘나는 이제 이 생활에 익숙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이 상황, 이 관계들에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이대로 문제없이 잘 지내면 이 삶 속에서도 꽤 잘 커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 유혹을 따르지 않는다면, 첫 번째 선택과 두 번째 선택 사이의 죽음과도 같은 변화를 다시 한번 겪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결국 진영과 영인의 운명은, 그들이 처음에 원했던 것을 얻기 위해서 다시 한번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과도 같은 그 고통스러운 변화를 다시 한번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인은 그것을 택했고, 진영은 그것을 택하지 않았다. 진영은 그가 현재에 가지고 있는 것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이것은 처음의 선택이 얼마나 옳았느냐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최소한 영인에게는 그것이 그가 선택한 두 번의 죽음과도 같은 변화를 감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영인의 그 변화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옳지 않음에 대해서 우리가 면죄부를 주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오히려 우리는 처음의 선택을 잊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유혹을 이기며, 포기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버텨준’ 영인을 응원한다. 그리고 현재의 관계를 버리는 선택을 하는, 죽음과도 같은 그 변화를 다시 선택해 준 그를 동경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내 주변의 틀이 얼마나 단단한지, 그리고 그 틀을 깨고 틀 밖으로 나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 틀에서 나왔을 때 벌거벗은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나약할지,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진영이었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마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미 발생한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으므로 이제라도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선택을 할 것이다. 진영은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더 좋은데 쓰고 싶었고, 그것이 현재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영인은 진영이 과거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 즉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진영의 입장에서는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것은 그가 현재에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자신이 가진 모두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틀을 깨지 않기로 한 그의 결정을 전적으로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처음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 단지 어렸을 적, 철이 없었음에 비난을 의존할 수 있을까. 사실 그 선택 이후 수많은 선택의 순간마다 변화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더 일찍 결정했다면 깨고 나와야 할 틀은 나중보다 덜 단단했을 것이다. 우리가 책임을 묻고 싶은 지점은 여기에 있다. 그동안 뭐 했냐고. 옳지 않은 선택을 하면서 좋은 건 모두 맛보았으면서 왜 이제 와서 억울하다고 말하느냐고. 그런데 이 질문은 영인에게도 똑같이 던질 수 있다. 그동안 괴롭지 않았냐고. 어떻게 버텼느냐고.

어쩌면 우리는 가장 달콤한 순간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 달콤함에 취해 순수한 시절의 생각을 잊어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를 감싸고 있는 틀은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틀 안에 만족하며 계속 살지 아니면, 이 틀을 깨고 나올지. 틀을 깨고 나오는 것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좋은 틀을 선택했다면 그 틀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이 틀이 과연 옳은지, 나에게 맞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지금 미루더라도 언젠가는 그 질문에 맞닥뜨릴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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