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4 영화 리뷰 [팬텀 스레드] : 새로운 강함을 위한 약함 영화: 팬텀 스레드 개봉: 2018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어떤 세계 어떤 세계가 있다. 모든 게 질서 정연하다. 작은 것 하나에도 정해진 입장이 있고, 취향이 있다. 대부분의 것들은 이미 검증되었고, 그 때문에 새로움에 대한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정교하게 짜여 있는 질서는 어떤 문제든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고, 안전하다. 여기서 이 질서를 만든 이는 스스로 강함을 느끼고 있으며, 이런 자각은 이 질서를,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갑옷을 더욱더 빈틈없이 짜여 있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질서의, 조직의 공극이 점점 더 메워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채워지는 공극과 그로 인해 더욱 단단해진 질서는 만족스럽지가 않을 때가 있다. 이전의 단단함이 정.. 2023. 1. 22. 영화 리뷰 [이터널 선샤인] : 잊지 않고 싶은 이유 기억 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건 죽을 만큼 힘들다. 그래서 기억을 지워주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사랑했든지,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나고 얼마나 힘들고 지겨웠든지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버렸으면 좋겠다.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잊히지가 않아서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마음에 그 기억만 없으면 좀 살 수 있을 것 같을 때가 있다. 기억을 지워주는 장치가 있다고 하자. 깔끔하게 내가 원하는 부분만 정교하게 기억을 지워주는 장치가 있는 병원에 가서 한참을 고민할 것 같다. 정확히 어디까지 지워야 할까. 이 기억과 이 기억은 어떻게 분리하지. 이건 상관없는 기억인데 어떻게 보존해야 하나. 기억을 지우기 위해 기억을 헤집다 보면 이건 이래.. 2023. 1. 22. 영화 리뷰 [피닉스] : 서로 다른 시간 속의 상처 지워져 버린 시간의 흔적 나의 얼굴이 바뀌더라도 여전히 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쟁의 상처가 얼굴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 상처를 가리기 위해 새로운 얼굴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주인공 넬리는 여전히 예전의 얼굴이 그리웠다. 모든 것이 망가진 지금, 그 얼굴이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매개체였다.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나를 증명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된다. 얼굴이 그렇게 나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넬리는 그렇다고 할 것이다. 단순히 형태를 넘어서 내가 짓는 표정, 눈의 깜빡거림, 흉터, 주름이 그동안 내가 살아낸 시간들을 담고 있다. 그것이 아름답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모든 흔적들이 내가 가진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 속에는 슬프거나 잊고 .. 2023. 1. 19. 영화 리뷰 [피아니스트의 전설] : 한 걸음의 무게 한 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거기에서 살아온 사람에게 그곳을 떠나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 영화의 시작은 여기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배에서 내리지 못한다.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할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배 밖으로 가까이 보이는 항구에 대한 두려움은 어쩌면 이길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나를 발견하는 과정 주인공 나인틴헌드레드는 배와 육지를 연결하는 계단의 중간에 멈춰 멀리 육지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생각에 잠긴 후 다시 배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는 결국 새로운 세상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버리지 못했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틀을 깨지 못했다.. 2023. 1. 18.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