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건 죽을 만큼 힘들다. 그래서 기억을 지워주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사랑했든지, 그리고 그 사랑이 끝나고 얼마나 힘들고 지겨웠든지 그런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지워버렸으면 좋겠다. 아무리 잊어버리려 해도 잊히지가 않아서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마음에 그 기억만 없으면 좀 살 수 있을 것 같을 때가 있다.
기억을 지워주는 장치가 있다고 하자. 깔끔하게 내가 원하는 부분만 정교하게 기억을 지워주는 장치가 있는 병원에 가서 한참을 고민할 것 같다. 정확히 어디까지 지워야 할까. 이 기억과 이 기억은 어떻게 분리하지. 이건 상관없는 기억인데 어떻게 보존해야 하나. 기억을 지우기 위해 기억을 헤집다 보면 이건 이래서 못 지우고, 저건 저래서 못 지우게 될 것 같다. 마치 안 입는 옷을 정리하려고 옷장을 열었다가 막상 버릴 옷을 선택하는 것은 몇 개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좋았던 기억을 포함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억은 지워야 할지, 아니면 좋았던 건 두고 안 좋은 기억만 지워야 할지도 고민이다. 안 좋은 기억만 지운다면 그 사람을 지우긴 한 걸까. 좋은 기억만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을 다시 또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나와 그 사람이 함께 안 좋았던 기억만 지운다면 그리고 좋았던 기억만 남겨 둔다면, 우린 다시 좋은 관계로 되돌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그렇게 좋았던 관계도 결국 안 좋아지는 걸 보면, 일부 기억을 지운 후 예전의 좋았던 관계로 되돌아간다 한들, 다시 안 좋아지는 게 결국의 결말이 아닐까. 역사는 반복되므로.
본질과 운명
이 영화에서는 잊고 싶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지운다.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용케도 골라내어 모두 지웠다면 사랑했던 그리고 슬펐던 그 사람이 나에게서 모두 빠져나간 걸까. 내 몸에 남아있는 습관과 무심코 입에서 튀어나오는 그 사람의 이름, 누구든 그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나의 특정 반응들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에서 나온 걸까. 아니면 애초에 나에게 정해진 혹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나의 본질일까. 처음부터 내가 그렇게 태어난 것이든, 그 사람과 같이 보낸 시간 동안 생성된 것이든,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나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혹은 반대로 그렇게 사랑했던 사람과의 사랑이 끝날 때쯤, 그동안 그 사람으로 인해 내 몸에 남은 모든 습관과 달리, 이제는 진저리 나게 싫어져 버린 나의 감정은 내 진짜 마음, 내 본질과 얼마나 닿아 있을까. 영화에서는 이제 도저히 끝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던 마음으로부터, 과거의 슬픈 기억을 모두 잘라내어 버리니, 마치 리셋된 것처럼 싫었던 사람에 대한 새로운 사랑의 마음이 다시 생기는 게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을 내 마음이 하는 것인지, 내 몸이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되도록 외부의 힘으로 정해져 버린 것인지가 헷갈린다.
만약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외부의 힘, 그러니까 운명처럼 정해져 버린 거라면, 그 관계의 주체가 나인지, 내가 노력하는 게 큰 의미가 있을지, 그리고 ‘운명처럼'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짐을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게 맞을지 고민이 된다. 만약 그렇게 내려놓음이 맞는 거라면, 관계를 하면서 힘들어할 이유가 없고, 앞으로도 딱히 어떤 노력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 뜨거운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내가 그렇게 되도록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었던 거라면, 슬픔이 그토록 슬프지 않을 것 같다. 또 동시에 인생이 그렇게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의지
다행히 나의 의지와 운명 사이에 어떤 것이 나의 이야기를 결정짓는지는 파도처럼 늘 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일은 온전히 내 의지와 노력으로 이뤄낸 것 같지만 다시 보면 그렇게 흘러가도록 작은 운명들이 작용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리고 또 어떤 때는 나는 생각할 새도 없이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큰 힘을 따라가기 바빴지만, 사실 내가 평소에 생각하고, 고민했던 것들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은 일들도 생긴다. 가만히 보면 내 의지의 힘과 운명의 힘은 서로 뒤엉켜서 뭐가 더 강한지를 하나하나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엎치락뒤치락한다.
누군가와의 사랑 이후, 결국 그 관계가 지겨워지고, 어떻게 지겨워지는지 그 과정을 모두 알게 됐다고 하자. 그럼에도 만약 지금 당장의 끌림이 있다면 과거의 실수들에, 혹은 다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그 미래의 실수들에 그냥 오케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최소한 내 운명이 아니라 의지가 하는 것 같다. 만약 내 몸이 그렇게 특정 상황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끌릴 수밖에 없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왜냐면 그것은 이미 한 번 경험한 실패가 반복될 것 같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각오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미 겪은 모든 슬픔을 다시 겪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그 각오를 세우는 순간만큼은 운명이 아니라 내 의지가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각오를 하는 사람은, 처음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각오가 만든 사랑이 결국 힘들게 끝난 후에도 그 기억을 쉽게 지우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랑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결정한 각오가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조엘은 그래서 결국 기억을 지우지 않기로 했나 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