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행운
그들은 과연 그 이후에 행복했을까. 주인공 잭은 다른 삶을 살아보았지만 케이트는 그러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잭은 이제 완전히 변한 걸까. 어떤 선택을 해서 10년 넘게 산 이후에, 어떤 계기로 인해 그가 과거에 했던 선택과 반대되는 선택을 했을 때 어땠을지를 경험하는 게 과연 행운인 걸까. 만약 그게 행운이라면 그런 경험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잭의 경험은 불공평하게 느껴질 것 같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 일어나기에는 너무 반칙 같아 보여서 기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여기서도 주인공 잭은 일종의 멀티버스를 경험한다. 한 번의 선택이 향후 십 년의 모든 삶을 바꾼다는 전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선택에 따른 두 삶은 너무도 달라서 그 선택이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영화적인 설정이다. 그리고 선택의 기로에 선 주인공을 다루는 영화에서는 대개 이런 설정을 따른다. 선택 하나가 이후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리기 때문에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직접 그렇게 살아볼 수 없지만, 영화 속 주인공을 통해 선택에 따른 두 가지 삶 모두를 살아보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하게 해 준다. 대개 이 경험을 통해 주인공은 각성하고, 앞으로의 삶은 달라진다. 영화 덕에, 우리도 그 기적을 약간 대리체험 한다.
삶이 바뀌는 시간
실제로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한 이후에 자신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 직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과거 자신의 삶을 보며 느낀 후회가 너무 강해, 그것이 이제는 다른 삶을 살아야지 하는 다짐의 강한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전까지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할 수 있게 되고, 이게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고, 이 결과가 다시 다른 것의 새로운 동력이 되고, 계속 새로운 도전들을 하게 되는, 선순환의 경험 사례를 보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이것 역시 현실판 멀티버스를 사는 경험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만약 이런 경험을 한다면, 내 삶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 이후에는, 죽음 가까이 가는 경험을 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그 이후 삶의 변화에 덕을 보았으니 경험의 당사자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은 나의 삶에는 조금 불공평한 느낌이 든다.
다행인 건, 죽음과 같은 경험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경험 이후에, 앞서 말한 예처럼 각성을 하고 자기 삶을 이전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경험 이후,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어떻게 해냈을까. 죽음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행운을 잡는 방법
질문에 대한 답의 힌트를 다음의 질문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잭의 기적 같은 경험이 잭에게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에게는, 아무나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경험이 하필 잭에게 찾아온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잭이 그 경험을, 그 운을 부른 것처럼 보였다. 잭이 원래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삶을 살아본 이후에 그가 깨닫는 것을 보면 말이다. 대개 깨달음은 미리 깨달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해되기가 힘들다. 잭의 새로운 경험이 며칠이었을지, 몇주였을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아무리 강렬했다 한들, 그것만을 가지고 그전 십 년 동안 강하게 가졌던 믿음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앞서 말한 죽음을 경험한 당사자도, 단순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순간의 경험만으로, 이전 긴 시간 동안 쌓인 경험에서 완전히 탈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아마도 이전의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준비가 있지 않았을까. 겉으로 크게 내색하진 않았으면 깨달음에 대한 열망이 오랜 시간 동안 잠재하고 있지 않았을까. 대개 모든 일은 한 번에 일어나지 않듯이 말이다. 사람의 생각과 믿음은 시간과 함께 자라기 마련이다. 물리의 법칙처럼 생각에도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공항에서의 선택에 대해 잭은 두고두고 생각했을 것 같다. 아주 후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봤을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의 삶이 자신에게 맞는 것인가, 정말 이게 행복한 삶인가 하고 지속적으로 스스로에게 물었을 것 같다. 겉으로 행복해 보이고, 지금 하는 일도 유능하게 잘 처리할 수 있지만, 궁극의 목적에 대해 질문을 멈추지 않았을 것 같다. 나의 삶, 나의 행복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질문을 멈추지 않을 때, 현재의 익숙함과 편함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껍질을 깨고자 하는 의지를 계속 유지할 때, ‘어떤 것들’이 찾아온다. 그것은 기회일 수도 있고, 운일 수도 있다. 혹은 사실 기회든 운이든, 그런 것들은 늘 우리 주변에 있었는데, 이제야 그것들이 발견된다. 우리 눈에 띄게 되고, 우리 안에서 꽃 피울 수 있게 된다. 잭의 경험을 사실 잭이 부른 것이라면, 그런 행운이 그에게만 일어났다며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그것은 잭의 의지가 가져온 결과이고, 아마도 그런 행운은 지금 우리 근처에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잭처럼 자기 안에서 꽃 피워주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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