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에 부딪힐 때
아무것도 일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기대했던 일은 틀어지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신당하고, 주변의 압박이 밀려온다. 내가 문제여서 인지, 아직 때가 아니어서 인지 모르겠다. 그러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지 하고 점점 희망을 버리게 된다. 하지만 아직 욕심이 남아 있어서, 포기는 못하겠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근본적인 것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로 에너지를 쏟고 싶진 않다.
어떤 것을 새로 시작할 때는 의지가 충만해있다. 뭘 하든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준비가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문제에 봉착하고, 계획이 수정된다. 그리고 다시 일을 추진해 나가다가, 다시 문제에 부딪힌다. 다시 수정. 이런 것들을 반복하다가 내가 이제까지 진행했던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다. 주변에서 들어오는 챌린지 혹은 내 스스로의 자각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 일은 안 되겠다 하고 느껴질 때가 온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일이 실패할 때
어떤 일을 위해 가졌던 처음의 목적이 중요해 보인다. 그것이 얼마나 단단하고 건강한가에 따라 내가 준비하던 일이 문제에 봉착했을 때, 거기에서 얼마나 지치지 않을 수 있는가가 결정되는 듯하다. 끝까지 놓치지 않을 만한 가치가 있는 목적이라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문제의 수정을 제법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것에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사실 일이 문제에 부딪히고, 그것을 수정하는 과정은 내가 그동안 그 일에 가졌던 애착이 흔들리는 경험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상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내가 애착을 가지는 일은 나와 동일시되기 쉬운데, 그 일에 대한 챌린지는 곧 나에 대한 챌린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잘못 살아온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일도 문제에 봉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수정이 필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정을 요구하는 주변의 의견을 접할 때, 방어적으로 반응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일에 대한 주변의 생각일 뿐이지, 나에 대한 공격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에는 나의 애착이 들어 있지만, 나와 일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둘을 분리할 때, 주변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있다.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받아들이다 보면 대개 주변의 반응은 도움이 되는 것임을 발견한다. 내가 하는 일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대개 어떤 일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이것저것 수정을 통해서 그 일은 점점 더 다듬어지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이해될 수 있는 일이 된다. 그 일의 근본이 가치 있는 목적에서 시작했다면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일의 진행과정에서 우리는 그 일에 매몰될 때가 많다. 아무리 내가 담담하게 주변의 피드백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도저히 일과 내가 분리되지 않을 때가 있다. 문제는 일에 작은 수정이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이다. 혹은 아예 처음부터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경우, 아무리 냉정하게 보려 해도,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는 힘들다. 포기하지 않기가 힘들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 할 때, 이미 이제 더 이상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쉬운 것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요행 만을 바라면서, 가만히 기다리게 될 때가 온다. 사실상 나는 실패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나를 지켜주는 것
이럴 때 일의 근본적인 목적이 우리를 지켜준다. 좀 더 확장해 보면 삶의 근본적인 목적이 우리를 지켜준다. 지금 실패는 단순히 과정이고 수단이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어느 정도 감정에서 초연하게 만들어 준다. 일의 실패가 결국 나의 실패는 아니라는 사실을 놓지 않게 해 준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실패한 점보다 취할 수 있는 점에 더 집중하게 해 준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전의 일은 대수롭지 않았다는 듯이 담담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 담담함이 중요하다. 이것은 어떤 것에도 너무 휘둘리지 않고, 과거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하기로 했던 일을 원래 계획대로 차곡차곡해나갈 수 있게 해 준다. 근본적인 목적이 묵직하게 나의 방향을 잡아주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마다 어떤 일에 대해,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목적이 다르겠지만, 최소한 이 영화에서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인공 마지에게 행복은 확실히 일도, 돈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여기저기를 다니며, 그다지 부산하지 않게, 너무 심각하지 않게 하나씩 하나씩 차분히 일을 처리해 간다. 그렇게 답을 찾고, 필요할 때는 용기도 부릴 줄 안다. 어떤 과장된 두려움 없이,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편견 없이 대할 수 있는 태도를 가졌다. 남편의 그림이 겨우 3센트짜리 우표에 사용되도록 당선이 되었을 때, 우표의 가격이 그림에 대한 노력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할 줄 안다. 보통의 일상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잊지 않고 있는 그녀에게, 세상의 자극들은 단지 주변에 흘러가는 작은 이벤트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너무 일에 파묻혀 있는 사람들보다 자신의 일을 더 잘할 것 같다. 어떤 일이든 더 잘할 것 같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이렇게 담담하게 유지시켜 줄 무언가를 찾는 일일 것 같다. 그게 있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든, 실패를 맛보든, 중심을 잃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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