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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히든] : 생각의 주도권

by 리질리언스 2023. 3. 29.

생각의 잠식

  한 번 의심이 생겨버리면, 그것이 없었던 때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자신 주변을 찍고 있는, 출처를 알 수 없는 비디오에 주인공 조르쥬가 처음으로 궁금해했던 것은 이것을 누가 찍었는가였고, 그다음은 왜 찍었는가였다. 비디오를 찍은 의도가 무엇일까를 궁금해하다가, 비디오로 인해 자신의 삶에 생긴 변화가, 그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비디오를 보낸 의도처럼 생각이 된다. 아내 안느와의 싸움, 아들의 가출,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비디오의 의도처럼 읽히게 된다. 한 번 그런 식으로 생각이 방향을 정해버리면, 좀처럼 그 방향을 틀기가 힘들다. 그래서 각 사건이 발생한 원래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어느 한쪽으로 쏠려버린 시선은 사건과 관련된 여러 요소에 대한 눈을 닫게 한다. 편견이 생긴다. 답을 정해놓고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진짜 이유를 찾지 못하게 한다. 진짜 이유를 찾지 못하니 상황은 계속 꼬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어디서부터 다시 수정해야 할지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이 되어 있다. 편견 어린 생각이 이렇게 무섭다.
 
  조르쥬에게 비디오를 보낸 사람이 이것까지 계획했을지는 알 수가 없으나, 최소한 비디오가 조르쥬의 일상을 망치는 데는 충분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조르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에 대한 판단에 비디오와의 연관성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조르쥬는 '스스로 일으킨'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쌓아가는데, 이 부분이 비디오 제작자에게는 가장 통쾌했을 것이다. 조르쥬 스스로 만든 잘못된 행동이 그의 인생을 망쳐가는 것을 보는 것 말이다. 사실 이제부터 비디오 제작자는 조르쥬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미 조르쥬는 충분히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악순환의 고리

  조르쥬는 그 악순환의 고리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 모든 것을 잊기에는, 스스로 만든 잘못이 씻을 수 없는 기억을 다시 만들어냈다. 누군가의 자살 과정을 목격하는 것. 그리고 여기서 그는 다시 묻기 시작한다. 그게 자살까지 할 일인가. 과연 내가 과거에 그에게 어떤 일을 했었는가. 그것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끊어지지 않는 질문들, 스스로 자라나는 질문들. 질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나의 의지로 통제되지 않을 때가 있다.
 
  결국 자발적이 않은 생각, 주체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생각이 문제다. 생각은 무의식과도 연결되어 있으므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 그 시작과 큰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떤 의지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으로부터 주도권을 뺏길 때,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은 내 것이 아닌 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주체성이 나에게 있든 아니든, 이미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나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생각을 강조하고, 자기 확언과 같은 것으로 생각의 방향을 통제하려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내 머릿속을 차지하는 생각은 내 삶으로 발현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조르쥬가 악순환의 고리를 탈출하는 것은 생각의 주체성과 연결될 수 있겠다. 이미 나를 빼놓고 생각이 생각을 낳는 상황에서 다시 생각의 주도권을 찾아올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어쩌면 힌트는 "머릿속을 차지하는 생각은 결국 삶으로 발현된다"는 것에 있을 수 있다. 사실 반대로, 삶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내 생각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여기서 삶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란 내 몸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그리고 내 몸을 움직이는 방식은 생각의 흐름보다 통제가 수월하기도 하다. 생각과 몸이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생각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몸을 통제하는 것일 수 있다. 
 

생각과 몸

  의심이 생긴 사람의 몸의 움직임은 어떨까. 의심을 표현하는 몸의 움직임이 따로 있느냐는 의심이 든다면, 태도로 바꿔 말할 수도 있겠다. 의심이 생긴 사람의 몸의 태도는 어떨까. 찌푸린 미간, 구부정한 어깨, 불안한 다리의 흔들림. 사실 우리 몸은 작은 생각, 감정 하나하나까지 몸의 자세와 움직임에 모두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자세와 움직임은 태도를 만든다.
 
  어쩌면 생각의 주체성에 대한 시작은 지금 나의 몸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와 가장 중요한 연관성을 갖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디에, 어떤 자세로 있을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들을지 말이다. 몸의 행동이 생각을 결정하는지, 행동은 단지 생각의 반영인지는 확실히 구분 지을 수 없으나, 일단 몸과 생각은 서로 강한 영향을 주고 있고, 당장 내 몸의 움직임이 내 통제로 바뀔 수 있는 것은 눈으로 확인가능하다. 그렇다면 제 멋대로 돌아가는 생각에 머리가 아플 때, 일단 몸을 그 반대 속성으로 움직여볼 일이다. 그것이 생각의 고리를 탈출할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생각의 주도권을 생각에 뺏기지 않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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