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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프라이멀 피어]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by 리질리언스 2023. 9. 24.

  프라이멀 피어(Primal Fear)’원초적인 공포라는 뜻이다. 공포 중에서도 가장 강한 공포. 노력과 의지로 없애기 힘든, 마치 태고적부터 있었던 것처럼 떨치기 힘든 공포란 어떤 걸까. 영화는 이렇다 할 직접적인 설명 없이 그걸 느끼게 해 준다. 

 

슬픔이 다른 감정으로 전이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슬픈 이유는 많다. 사람의 이런저런 모습들, 함께 했던 추억들이 생각나고, 함께 꿈꾸었던 미래를 같이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길 없는 아쉬움 같은 것들. 사람 아니면 같은데 하며 느껴지는 상실감. 있던 사람이 이제는 없어지면서 마음 구석이 비어져버린 같고, 이제는 영영 채워지지 않을 같다. 만약 상대방이 나에게 헤어짐을 통보했을 경우, 내가 잘못했는지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그걸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나를 떠난 사람 때문에 힘들다.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점점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나의 마음 상태이다. 사람에게 내주었던 마음 일부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같다. 특히 사랑하는 마음이 컸을수록 이제 다시 누군가에게 그만큼의 정성과 성의를 수는 없을 같은 생각에 슬퍼진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알아보고, 사람과 얘기하고, 많은 생각을 공유했던 시간들을 내가 다시 가질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들며 슬퍼진다.

 

  그런데 슬픔이 어느 순간 다른 감정으로 전이될 때가 있다. 사람과 함께 했던 믿음과 시간들이 헤어짐으로 결국 부정당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상대방의 부재에 집중되었던 생각이, 시간이 지나며 이제 점점 사람을 선택하고 시간을 보냈던 나의 잘못으로 집중된다. 사람에게 줘버린마음, 사람을 향한믿음, 사람을 믿었던감정, 판단력. 이런 것들로 생각이 옮겨질 , 결국 '나'라는 인간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 결국 내가 틀렸던 거구나 하고 말이다. 내가 문제였구나 하고 말이다.

 

삶을 대변하는

  진실이 정의하기가 힘든 , 사실 모두에게 적용될 있는 진실이라는 찾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나에게는 진실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진실이 아닐 수가 있다. 그래서 진실은 해석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변호사 마틴 베일은 재판에 대한 자신만의 진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남들이 생각하는 진실과는 조금 다를 있지만, 마틴 베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진실에는 자신이 납득할 있는 근거가 있고, 그는 이것이 중요하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확고한 신념이 있고, 그것 때문에 남들의 어떤 비난에도 당당할 있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경우, 삶을 내가 온전히 있다는 것이 좋다. 누군가 행복의 중요한 요건 하나는 삶의 자기 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확고한 신념이 있다는 것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삶의 자기 결정권을 위한 든든한 기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생각을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거를 있는 거름망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통해 남들이 삶에 얼마나 개입할 있을지를 내가 결정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고한 신념이라는 것을 유지하는 것이 쉬운 아니다. 사실 없는 것이 훨씬 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것은 그저 ‘소문 열심히 따라다니면 일이다. 사실 열심히 필요도 없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이게 맞다고 얘기해 주고, 그럼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가면 그만이다. 그러면 나는 항상 누군가의 무리 속에 있을 있고, 안전하다 느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때이다. 그때는 내가 누렸던 안전함의 느낌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앞서 말한누군가가 물어다 소문 없기 때문에 이제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의 근거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미 나는 무리에서 뛰쳐나왔기 때문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그래서 외롭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과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그런데 외로움을 모두 견뎌야만 삶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자유를 얻을 있다.

 

가장 무서운

  신념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 마틴 베일이 가지고 있는 신념 역시 오랜 시간, 많은 일들을 겪으며 만들어진 것이다. 그가 믿는 정의에 대한 정의, 검사, 변호사라는 일에 대한 신념에는 그가 살면서 겪었던 시간과 생각들이 녹아있다. 살면서 어떤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들이 모여 현재의 신념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나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내가 인생동안 만들어온 신념에 근거해서 현재의 행동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행동을 하며 만들어진 나의 해석들은 내가 가지고 있던 신념을 갱신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신념이 나를 대변한다고 얘기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질문을 했을 , 대답이, 그리고 대답이 근거한 기본적인 생각의 틀이 나를 대변한다고 얘기할 있다. 그것이 그동안 내가 살면서 고민한 시간들의 흔적이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생각의 틀이 잘못됐다면 내가 그동안 거기에 쏟아부었던 내 경험과 시간이 잘못됐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정말 신념이 잘못됐다는 알게 됐을 어떤 느낌이 들까. 하나의 사건은 잘못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념 전체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 때는 어떨까. 그러면 신념을 만들어온 시간, 경험들에 대해 전적으로 부정당하는 느낌이 아닐까. 원초적인 공포라는 것은 아마도 이걸 뜻할 수도 있다.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느낌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역시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아마도 사람과 함께 내가 가졌던 시간, 경험, 믿음들이 온통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게 될 때인 것 같다. 결국 사람이 아니라 나에 대해서 회의가 느껴질 때인 같다. 내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과거의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도려내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기 힘들다고 느껴질 때인 같다. 헤어졌다는 내가 어딘가 틀렸다는, 삶이 어딘가 틀렸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마틴 베일이 느꼈을 공포 역시 그런 아니었을까. 이제까지 그가 쌓아온, 사람에 대한 신념, 법의 체계에 대한 신념, 자신이 변호사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신념이 번에 흔들릴 , 그는 과연 이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는,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하는 공포를 느꼈을 같다. 내가 마틴 베일이었다면 그런 공포를 느꼈을 같다. 쉽게 헤어 나오기 힘든 늪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일 것 같다. 나를 스스로 부정하게 만드는 늪에 빠지는 것이 가장 무서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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