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떻게 시작될까. 그리고 어떻게 끝이 날까. 어떤 마음이 생겨서 뜨겁게 타오르고 서서히 식어가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예쁜 사랑을 했으면 됐다고, 그거면 됐다고 느껴지기고 하고, 이렇게 아플 거였으면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나았을 뻔했다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사랑의 끝을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관찰
처음에 누군가가 어떻게 내 마음에 들어오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계속 그 사람이 눈에 띄고 관찰하게 된다. 자꾸 눈에 밟히고 궁금해진다. 엘로이즈를 바라보는 마리안느의 시선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야 한다는 명분이 있어서인지 마리안느는 실컷 엘로이즈를 바라볼 수 있었다. 엘로이즈의 몸을 구석구석 살피고, 그녀의 몸짓, 습관을 뜯어보며 기억한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는 경계와 호기심이 동시에 있다. 그런데 이 호기심이 경계를 넘어설 때, 경계에도 불구하고 계속 호기심이 일어날 때, 그때부터 호감이 시작된다. 사실 엘로이즈가 처음 그녀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호감이 아니라 직업적인 필요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단순히 그 물리적인 행위만으로도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만들기에 충분한 것 같다. 그것이 본인의 의지였든 아니었든 상관없이 말이다.
누군가가 나를 오랫동안 봐준다는 것은 참 고맙고 따뜻한 일이다. 그만큼의 시간을 나에게 내어준다는 것, 다른 곳을 안 보고 나를 관찰해 준다는 것, 나에 대해 궁금해해 준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다.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는 것에서도, 선생이 학생을 바라보는 것에서도, 연인을 바라보는 것에서도 하나의 시선이 누군가의 노력으로 든든하게 고정되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시선으로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고백
그러다 나를 봐준 상대방의 시선만큼, 나 역시도 언젠가부터 그 시선을 상대방에게 보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서로 공유했을 때 사랑이 시작된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처럼 나도 당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서로가 '알게' 했을 때, 그때 함께하는 사랑이 된다. 이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때, 그 시선을 나도 지켜보고, 느끼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따뜻한 시선에 나의 시선으로 보답하고 싶다고 말할 때 말이다.
그때가 되면 이제 세상에 다른 시선은 중요하지가 않고, 이 사람의 시선만 있으면 된다고 느끼게 된다.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이 사람에게 더 많이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사람이 느끼는 것보다 내 마음은 훨씬 큰데..라고 생각하며 내 눈빛에 더 많은 사랑을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렇게 나의 시선과 상대의 시선이 정확히 서로를 바라보고 있고, 사랑스러운 시선의 대화를 하게 된다. 이 사람의 시선 속에서 내 마음은 가득 차고, 나의 시선으로 이 사람도 같은 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한 순간의 시선도 놓치고 싶지 않다.
타이밍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떤 이유로든 간에 그 시선이 흔들릴 때가 있다. 이제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더라도 더 이상은 예전의 시선을 유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엘로이즈는 처음부터 떠날 운명이었다. 누군가와 결혼을 하기로 정해져 있었다. 그녀 역시 마리안느에 대한 시선을 유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는 마리안느에게 물었다. 내가 결혼하지 않기를 바라느냐고. 그렇다고 마리안느가 대답했다. 다시 물었다. 그럼 정말 하지 말까 하고. ‘아니’라고 마리안느가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만약 현실을 거부했다면 어떻게 될지 너무 두려웠을 수 있다. 단순히 사랑이라는 이유로 ‘현실이라 말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을 거부했을 때, 이후 어떻게 감당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서 두려웠을 것이다. 당연히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마리안느와 엘로이즈가 서로를 향해 가지고 있던 시선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타이밍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결혼이 예정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달랐을 텐데, 이루어질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상황이 힘들 때, 많은 경우 이 타이밍이라는 것을 탓한다. 나도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좋긴 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건 어쩌면, 그렇게 했을 때, 타이밍에 탓을 돌렸을 때, 내가 감당해야 할 마음의 책임이 더 적게 느껴지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건 내 의지가 아니라 주변의 상황이나 운명의 탓으로 돌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아니’라고 대답한 건 마리안느였다. 그 순간, 그녀는 엘로이즈를 포기하기로 ‘결정’ 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그녀가 ‘어쩔 수 없기로’ 결정한 것일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았다면
마리안느에게, 왜 더 용감하지 못했느냐고 다른 누군가가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그럴 수 있다. 그게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지 스스로에게 평생 물을 것 같다. 그녀의 마음에 계속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 건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일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래서 그녀가 계속 그녀의 시선을 엘로이즈에게서 뗄 수 없는 것 같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는 이제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아직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시간이 달라졌다. 이제 두 시선은 교차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한 가지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그렇게 그리워할 거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지 하고 말이다. 두려웠겠지만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한 번 가보지 하고 말이다. 그랬다면 아직도 둘의 시선은 예쁘게 포개져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엘로이즈가 더 일찍 서로의 마음을 못 알아본 것이 후회된다고 마리안느에게 말했을 때, 마리안느는 후회하지 말고 기억하라고 말한다. 우리의 좋았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이다. 만약 그 둘이 이제는 끝났다고 포기하지 않았다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 기억도 그렇게 끝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든다. 더 많은 기억을 만들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자꾸 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