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긴장은 한 번 시작되면 답이 없다. 긴장의 원인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은 한 번 시작되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속에 정착이 되면, 이제 커졌으면 커졌지 스스로 작아지는 경우가 잘 없다. 왜냐면 내가 그것에 대해 생각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긴장이 발생했던 처음의 이유는 사라지고, ‘나는 긴장하고 있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 생각이 더 큰 긴장을 하게 만든다. 생각에서 아무리 빠져나오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코끼리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면 머릿속에 온통 코끼리 생각뿐이듯이, 긴장 풀라는 말이 때로는 더 긴장하게 할 때가 있다. 혹은 사실 긴장하는 줄 몰랐는데, 그때부터 긴장이 시작될 때가 있다.
긴장의 이유
어릴 적 운동회를 하면 있었던 달리기 시합이 난 늘 싫었다. 8명에서 10명 정도가 한 그룹으로 달리기를 했고, 그중 3등까지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1등 도장, 2등 도장, 3등 도장이 따로 있었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상품도 있었다. 공책이나 연필 같은 것이었다. 어릴 때 나는 키도 컸고 운동도 좋아했기 때문에 달리기에 불리한 조건을 아니었지만, 난 늘 출발선에 섰을 때의 긴장감을 싫어했다. 이후에 커서 생각해 보니 그 긴장감에 꽤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난 출발선에서 총소리가 나기 전 긴장감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 1등을 못할까 봐는 아니었다. 오히려 3등까지 주는 그 도장을 못 받을까 봐 걱정을 했었던 것 같다. 도장을 못 받는 건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인생의 작은 낙오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운동보다 공부가 더 중요한 거라 생각했음에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운동에서도 그런 낙오는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내 경험 속에서 긴장은 너무 잘하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었다. 1등 하려고 마음먹을 때 생기는 게 아니었다. 꼴등 할까 봐 걱정할 때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까 봐, 너무 창피할까 봐 하는 걱정에서 생기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하찮게 생각할지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이번에 그렇게 실패하면 다시는 이런 도전을 못하겠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그 걱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 걸 그랬나. 그랬음 내가 못하는 모습을 안 보여줄 수 있었는데, 영영 비밀로 둘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면서 도전을 시작한 나를 비난하게 된다.
긴장하지 않아도 될 이유
하지만 다행히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사실 오직 자기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 있을 때는 오직 자기 삶이 무료할 때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 얘기를 하면서 재밌어하거나 비웃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크게 과장하거나 그것으로부터 자기 삶의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삶을 볼 때 그 수준은 정말 얕다는 것이다. 잠깐 관심을 가질 수는 있어도, 잠시면 잊는다. 그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왜냐면 자기 삶을 기억하는데 쓸 에너지를 남의 삶을 기억하는데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렇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내 실수나 실패가 남들에게 노출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내 삶의 히스토리는 나만 기억하고 기록한다. 나에게는 내 삶이 워낙 중요해서 작은 디테일까지 모두 기억하고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이 쌓여 나는 그 기억을 딛고 다음 행동을 하게 된다. 어쩌면 긴장은 이 부분에서 만들어진 오해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내 삶의 디테일을 다른 사람도 나처럼 크게 생각할까 봐. 그래서 내 실수가 남들에게도 히스토리로 남을까 봐. 한 번 잘못하면, 그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기록되어 영영 잊히지 않고 간직될까 봐. 그래서 내가 낙오자로 영원히 낙인찍힐까 봐. 하지만 이것은 굉장한 오해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디테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것 기억하기에도 바쁘다.
히스토리를 쓸 수 있으면 된다
히스토리와 가십의 차이점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태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히스토리는 나 혹은 우리가 기록하는 것이어서, 기본적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노력이 담겨있다. 그렇게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는 더 잘하고자 하는 의지와 애정이 담겨있다. 다른 사람이더라도 나에게 애정을 가지고 나를 잘 돌봐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를 기억하고자 한다면, 이 기억과 기록은 ‘우리’의 히스토리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가십은 다르다. 가십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전달할 뿐이다.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은 쏙 빠져있고, 오직 재미와 자극을 원할 뿐이다. 애초에 이야기 전달자는 이야기 속 주인공에 그리 관심이 없다. 그냥 오늘 흘러가는 이야기, 시간 때우기용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다행인 건 나의 우스웠던 흑역사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휘발적으로 날아갈 거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사실 겁먹을 것은 하나도 없다. 나의 실수, 실패를 기억하는 사람은 나와 히스토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나를 기억하고, 애정을 가지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나의 든든한 뒷배이다. 반면 나의 이야기를 가십거리로 삼는 사람들은 나의 실수, 실패를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쯤 또 다른 ‘재밌는’ 얘깃거리를 찾아 헤매느라 바쁠 것이다. 이미 그들에게 나는 잊힌 지 오래다. 이들은 기억하려 해도 기억할 수 없는 까마귀들이다.
긴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이미 사로잡혀버린 생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은 굉장한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코끼리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의 든든한 뒷배를 생각하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지금 실수나 실패를 하더라도, 결국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들 내편인 거라고 말이다. 그들은 나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나를 속으로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넘어지면 나를 비웃기보다 도와주고 싶어 할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오히려 그럴 때가 많다. 다들, 저놈이 어디 잘하나 못하나 두고 보자는 식으로 매의 눈을 부릅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설사 지금 나를 지켜보는 모두가 그렇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별로 없다. 왜냐면 그들은 모두 까마귀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실수나 실패를 하든 그들은 곧 잊고 만다. 그리고 그때에도 최소한 한 사람은 나의 히스토리를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다. 나 자신 말이다. 내가 애정을 가지고 나를 지켜보고 있으면 그걸로 괜찮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으면 나는 결국 지금보다 더 나은 히스토리를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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