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과정
기댈 곳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를 이루어내는 건 엄청난 일이다. 이제까지 아무도 풀지 못했던 문제를 풀어내는 것. 그 문제에 솔루션을 제공하기에 앞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해야 한다. 대개 어려운 문제에는,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진심으로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문제로 인식조차 되지 않는, 보이지 않은 부분의 어려움들이 많이 숨어 있다.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서,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 어떤 식으로 접근할지 각각 최초의 시작점을 잡는 모든 과정이 창조의 과정이다.
사실 이 창조의 과정은 일정한 성과를 이루어내기 전까지는 창조한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지지를 받기는 힘들다. 겉에서 보기에 다른 사람들은 일이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창조하는 사람조차 알 수가 없다. 시작은 했지만 끝은 아무도 모른다. 창조자 자신에게도 처음인 과정이므로, 상황을 이끌어가는 힘은 단지 그의 믿음과 의지에서 나온다. 물론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창조자 스스로에게 약간의 만족을 주는 진전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다음 단계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그래서 남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정도까지 이르지 못할 경우, 그것은 단지 하나의 작은 해프닝으로 끝난다. 그렇게 창조의 과정은 그동안 거기에 얼마나 노력을 들였는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단지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수도 있는' 두려운 일이다.
일가를 이루는 것
어떤 분야에서든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대단하다. 하나의 기업을 만든 사람이라든지, 조직을 꾸려낸 사람,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세상에 없던 완결된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완결된 무언가는 그것의 지속가능함이 강할수록 내부의 강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창조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것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다양한 상황에서 특정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그것들이 여럿이 모여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 규칙이든 조직이든,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에는 하나의 덩어리, 하나의 가(家, family)를 이루어낸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솔루션 덩어리로 작용한다. 기업은 그 안에 사람을 고용하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덩어리이자, 더 중요하게는 지속적인 물질과 서비스의 가치를 생산하는 덩어리가 된다. 어떤 조직과 예술 작품도 각각의 상황에 대한 솔루션과 해석을 제공한다.
주인공 앨런 튜링 역시 다른 창조자들처럼 아무런 힌트가 없는 문제로부터 시작했다. 그는 여러 부분에서 위대함을 갖는다. 다른 사람들이 당장의 문제해결에만 집중할 때, 그는 자신이 던져진 싸움에서의 상대방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해석했다. 그리고 그 싸움을 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지속가능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것이 그의 첫 번째 솔루션이자 위대함이었다. 그리고 성공할지 아닐지 확신이 없는 채로 무수한 시도를 반복했고, 필요한 수단을 수집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될만한 사람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모집했다. 자신 주변의 상황을 자신의 스타일,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체계로 변환시켰다. 그것이 그의 두 번째 위대함이었다. 그럼에도 문제 해결은 역시 쉽지 않았고, 지속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해결에 대한 집착을 놓지 않았고, 그 어떤 작은 자극도 해결의 실마리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이 그의 세 번째 위대함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했다 생각했고, 임무를 완수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앨런 튜링은 아직 집중력을 놓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가 목표했던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솔루션이 만들어내는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전쟁의 종료였고, 그 관점에서는 어떤 훌륭한 솔루션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앨런 튜링에게는, 하나의 똑똑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이 일으키는 파장이 결국 목적이었다. 그는 남들보다 더 큰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시스템을 만듦으로써 하나의 가를 형성했고, 그것으로 그는 이미 위대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위대함의 바탕에는 그 시스템 너머의 세상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그것은 남들이 집착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궁극적인 것이었다.
비전의 이유
기업가, 발명가, 예술가처럼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자들이 위대한 이유는 세상에 없던 시스템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 시스템 안에 내재하는 치밀한 규칙과 조직을 만들어내는 영리함과 꼼꼼함,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역경을 이겨낸 용기 같은 것들이 창조자들을 위대하게 만든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의 바탕에는 결국 그 시스템을 만들려고 시작한 본질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무엇을 위해 그 시스템을 만드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 같은 것이 존재한다. 이 물음에 답을 내려는 것을 우리는 비전이라고 부른다.
앨런 튜링은 얼마나 두려웠을까. 지속적으로 실패만 하는데, 진행과정의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을 때 말이다. 이제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생각이 드는데 조금도 성공할 기미가 안 보일 때, 단 하나의 발자국을 어디로 딛어야 할지 막막하고 깜깜했을 것이다. 칠흑 같은 암흑 속을 걷고 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은 바로 그가 가진 비전이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전쟁을 종료하고, 인류를 도울 것이라는 믿음말이다. 아마도 그것이 어둠 속에서 그가 앞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비전이라고 부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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