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보고 나서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어요. 뭔가가 가슴속 깊이 다가오는 느낌이랄까요. 삶에 대해 어떤 생각으로 접근해야 할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를 얘기해 주는 느낌이었어요. 굉장히 좋은 느낌이었고요. 아직 안 보셨다면 꼭 한 번 보셨으면 해요. 이 느낌을 같이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생은 왜 우리를 시험할까
살다 보면 생각만큼 사는 게 잘 풀리지가 않죠. 내가 생각했던 건 이런 삶이 아닌데 하면서, 자꾸만 꿈꿔왔던 것에서 멀어지는 내 삶을 보다 보면, 자신감은 떨어지고 희망도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요. 주인공 조 가드너도 마찬가지예요. 재즈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성공한 뮤지션의 삶을 꿈꿨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지가 않죠. 실력은 있는 것 같은데,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그냥 평범한’ 직업인 교사의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럴 때 삶이라는 것이 우리를 한 번 시험해 보는 것 같아요. 문제를 던져주고 이걸 어떻게 푸는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반응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앞으로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우리의 대처를 좀 보고 판단하겠다는 듯이요. ‘이 문제 잘 풀면 내가 다른 걸 줄지도 몰라’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조 가드너에게도 그런 일이 발생해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직장에서 정규직 제안을 받죠. 조 가드너의 엄마는 이제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됐다고 좋아해요. 주변에서도 축하해 주고요. 하지만 그는 생각이 많아져요. 이게 맞나?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하고 말이죠.
재밌는 건, 또 동시에 전혀 다른 기회도 주어진다는 거예요. 그동안 조 가드너가 그토록 원했던 뮤지션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죠. 그가 원하는 밴드에 오디션 기회를 갖게 되고, 그는 당당히 합격하게 돼요. 그런데 이제 그는 고민이 돼요. 둘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 꿈과는 조금 멀지만 주변이 편안해하는, 안정적인 교사의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오랫동안 꿈꿔왔던, 조금 불안하지만 원하던 것을 할 수 있는 삶을 살 것인가 하고 말이죠.
죽음을 이기는 방법
그러다 조 가드너는 갑자기 죽게 돼요. 웃기죠. 원하는 걸 드디어 얻기 직전인데, 드디어 삶의 옵션이 좀 주어졌는데, 아직 제대로 고민조차 못해봤는데 갑자기 죽게 돼요. 그러면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죠. 가만 보면 삶은 이런 식으로 전개될 때가 있는 거 같아요. 아무 일도 없는 따분한 시기가 한참 있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몰려오는 시기요. 삶이 어떻게 진전되는지도 모를 만큼 변화가 없던 시기가 오래 지나고, 모든 상반된 옵션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이걸 택하기도, 저걸 택하기도 어려운 시기 말이에요. 그럴 때면, 아 이런 좋은 옵션들은 그냥 그동안 한 번에 하나씩 왔으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에 너무 아쉽고, 인생이 야속하단 생각이 들어요.
여하튼 선생님, 뮤지션 사이 고민하던 중, 갑자기 죽어버리게 된 조 가드너에게는 또 다른 세계가 펼쳐져요. 둘 모두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죠. 하지만 그가 뮤지션이 되고 싶은 열망은 너무 강한 것이었어서 그는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사실 애초에 선생님이 되는 건 그에게 옵션이 아니었던 거죠.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오랜 시간 동안에도 조 가드너는 뮤지션이 되는 꿈을 절대 잊지 않고 있었거든요. 여기서 이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기에도, 힘이 빠지고 남들이 보기에는 포기할 법한 상황에서도 바라던 꿈을 잃지 않고 지켜왔던 거요. 그것이 죽음의 세계에서 조 가드너를 지켜주는 힘이 되었던 거죠. 나는 반드시 다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래서 내가 원했던 것을 꼭 이루고 말겠다는 생각에 그는 죽음을 이겨낼 방법을 찾게 돼요.
그 방법은 바로 영화 속 다른 캐릭터인 22를 이용하는 거였어요. 22는 어떤 자격을 갖추면 지구에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영혼인데, 문제는 그가 삶이라는 걸 살아볼 의지가 전혀 없다는 거였어요. ‘너무나 살고 싶은’ 영혼과 ‘삶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영혼, 두 영혼이 만난 거죠. 22에게 지구에서의 삶은 지루한 것이었어요. 지금 있는 우주 같은 곳에 너무 만족하고 있어서, 지구에서의 삶을 바랄 이유가 없었던 거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 22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은 두려움이었던 것 같아요. 지구에서의 삶을 즐겁게 혹은 제대로 살 수 없을까 봐, 열정이라는 것을 찾을 수 없을까 봐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런 22에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찬 조 가드너가 나타난 거예요.
살아본 후에야 보이는 것들
22가 지구에서 삶을 살 자격을 갖는 방법은 열정을 찾는 것이었어요. 열정이 있으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설정이 참 재밌죠. 하지만 마음속에 지루함으로 가득한 22는 삶에 대한 열정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런데 22에게 갑자기 어떤 기회가 발생해요. 우연찮게 조 가드너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그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요. 멀리서 바라보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사람의 몸속에 살며 직접 사람들과 얘기해 보고, 음식도 먹어보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손으로 받아보기도 하죠. 그리고 그렇게 ‘직접 한 번 살아보는 것’이 22의 마음속에 작은 불을 하나 짚이게 돼요. 예전엔 몰랐었던 느낌을 갖게 하죠. 그러면서 모든 것이 달라져요.
저는 여기서 가슴이 좀 멍해졌어요. 점점 삶이라는 것에 대해 태도를 바꾸는 22에게서요. 그동안 예상만 했던 삶이라는 것을 그가 직접 살아보니, 그전에 가지고 있었던 예상과 전혀 다름을 느끼고 작은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 가는 과정 말이죠. 직접 해보기 전에 가졌던 두려움들이 사실 별 것 아니었던 거예요. 그리고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과정을 보여주죠. 삶이라는 걸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열정'이라는 어떤 대단한 자격 같은 것이 필요한 줄 알았는데, 사실 그런 건 필요 없었고 그냥 살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근데 나중에 소울 카운슬러, 제리도 얘기해요. 사실 열정은 목적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그럼 목적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근데 제 생각에 그건 '그냥 사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 말이 참 쉽고 별 거 아닌 것 같은데 영화는 그렇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우리도 많은 경우에, 22처럼 해보지도 않고, 선입견에 사로 잡혀서 혹은 남들 말을 들으며 '이건 이럴 것이다'라고 하면서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삶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그 삶을 직접 살아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을 영화가 말하려는 것 같았어요. 사는 자체가 목적이라는 건 바로 이런 거죠.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냥 한 번 살아보는 거요. 시도해 보는 거요. 그러면 이제까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수도 있으니까요. 성공이라는 건, 아마도 그 미지의 세계 어딘가에 있는 거 아닐까요. 도전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때문인 거 같아요. 두려움을 딛고 '일단 시작해 보는, 그냥 살아보는' 거죠.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으니까요. 어제와 다른 삶이 되기를 원한다면, 어제와 다른 삶을 살아봐야 한다는 간단하지만 묵직한 메시지가 전 참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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