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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두 교황] : 위대함을 만드는 것

by 리질리언스 2023. 8. 20.

시각 장애인과 가이드러너

  패럴림픽의 시각 장애인 육상에는 가이드러너가 필요하다. 두 사람이 가는 줄을 손목이나 허리에 이어달고 함께 달린다. 100m 육상의 경우, 10초대의 기록까지 나온다. 웬만한 일반 선수의 속도가 나올 만큼 두 사람은 전력 질주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한 사람이 넘어질 경우, 두 사람 모두의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이 한 몸처럼 움직이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 운동이다.  

 

  시각 장애인과 가이드러너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잘 다듬어진 결과가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과정은 어땠을까. 그 시작은 어땠을까.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뿐일 텐데, 그런 강한 믿음을, 타인에 대한 의존을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어떻게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깊게 연결될 수 있도록 허락할 용기가 났을까가 궁금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누군가에게 의지한다는 건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하며, 나의 가장 큰 약점을 내보일 수 있어야 한다. 두 가지 모두 쉬운 일이 아니다. 

 

위대함과 무질서함 

  위대함이 한 번의 용기나 결심이나 변화로 만들어질 수 있다면, 세상에 위대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이, 누군가에 나의 약점을 내보이는 것이 한 번의 행위로 끝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한 번만 해서 위대함이 만들어질 수 있다면, 두렵더라도 그냥 눈을 질끈 감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위대함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넘어질 경우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두려움을 이겨낼 만큼의 자신감과 잘 들어맞는 호흡을 갖추는 것은 그렇게 한 번의 '눈 질끈 감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 세상에 있는 일은, 가만히 두면 호흡이 맞지 않고, 상대방을 믿기로 했음에도 자꾸 의심이 들 때가 있고, 내 약점을 완전히 드러내기로 했음에도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 생각이 들고, 노력하고 싶지 않고, 그만하고 싶게 되는 그런 것들이다. 세상의 일은 늘 무질서함이 커지는 방향으로 발생한다. 

 

  무질서함은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에 비난할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대하지도 않다. 위대함은 가만히 두면 무질서해지려는 자연상태에,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목적으로 이끌려는 에너지를 사용할 때 발생한다. 그리고 위대함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한순간의 결심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를 지속적인 의지를 가지고 사용해야 하고 그것이 일정 시간 동안 모여야 하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과 가이드러너가 굳은 결심으로 육상을 시작한 뒤에 있었을 수많은 노력과 훈련이 그것을 말할 것이다. 처음의 마음이 흐트러지려고 할 때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력과 훈련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위대함은 처음의 생각을 꾸준히 유지하는 노력에서 발생한다. 그 긴 시간 다음에야 발생한다. 시각 장애인과 가이드러너의 질주를 볼 때, 두 사람의 속도와 손발 움직임의 잘 맞음에도 놀라지만, 그것을 만들어내기까지 버텨냈을, 그들이 이겨냈을 그 긴 '시간들'이 느껴지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것은 한 번의 기발한 아이디어나 의욕에 찬 결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타협과 변화

  영화의 주인공인 프란치스코의 현재 역시 한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은 과거의 생각과 다르다. 그는 과거의 어떤 일은 잘못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교황이 될 자격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 그것은 타협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생각을 계속 발전 시켰고, 오랜 시간을 노력했고, 훈련했다. 그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대개 생각보다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힘들고, 치열하고, 불만족스럽다. 그때마다 의심이 쌓이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해서 될까 하는 생각을 계속 이겨내야 한다. 그러려면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생각을 잊지 않고 간직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주변의 유혹과 의심들이 달려들 때, 내 중심을 잡아줄 수 있도록 말이다. 프란치시코의 위대함은 그가 지금 뱉는 아름다운 말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말들이 나오기까지 그가 과거에 만들어낸 생각의 변화와 축적한 행동의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그에서 그가 가진 삶의 역사와 시간을 느낀다. 

  

  사실 타협과 변화는 크게 다르지 않다. 크게 다르지 않은 시작점이다. 어쩌면 타협은 내가 내 생각과 다른 상황에 맞추도록 강요받아 따르는 것이고, 변화는 내가 내 생각과 다른 상황에 맞추도록 스스로 허락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이 상황이냐 나 자신이냐일 것이다. 시작에 이 둘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간격이 점점 벌어질 것이다. 타협에서는 무질서함이 더 커진다. 나를 잃어버리면 점점 더 그렇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순간, 타협할 것인가 변화할 것인가의 질문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렵다. 내 생각을 지켜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시험대에 서야 한다. 타협 대신 변화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훈련해야 한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내 생각을 믿고 지켜내야 한다. 시각장애인과 가이드 러너처럼 말이다. 위대함은 그렇게 천천히 만들어진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마지막 겉모습일지라도 결국 위대함은 시간이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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