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얘기하는데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한 기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무리 설명을 해도 상대방이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고구마 백 개 정도 먹은 거 같은 기분이요. 이 영화는 그런 답답함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런데 아주 재밌는 방식으로 말이죠. 지금 모두가 다 죽게 생겼는데, 말을 해줘도 사람들이 도무지 듣질 않는단 말이죠.
대화를 위한 조건은 다 만들어졌는데
사실 요즘처럼 누군가와 소통하기 쉬운 시대도 없는 것 같아요. 소통의 수단 측면에서 본다면요. 멀리 있는 누군가와 얘기하려면 예전에는 전화를 이용해야 했었고, 그전에는 편지, 그전에는 사람이 직접 가야 했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도 단 몇 초 만에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할 수 있잖아요. SNS나 유튜브 같은 것들이 어디에 있는 누구하고든 실시간으로 연결될 수 있게 하죠. 근데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면 아무리 상대방이랑 연결이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들어줄 마음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연결만 되어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상대방이 들을 맘이 없으면 결국 소통은 불가능한 거 같아요. 특히 요즘처럼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가 넘쳐날 때는 말이죠. 차라리 예전처럼 서로 간에 연결이 잘 안 되어 있을 때는, 나에게 들어오는 정보가 적고, 그래서 정보 하나하나가 가치를 가졌는데,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오히려 정보의 가치가 없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정보들에 좀 벅찬 느낌이랄까요. 이 많은 정보들 중에 나에게 진짜 쓸모 있는 것을 가려내는 것이 하나의 필수적인 능력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죠.
어떻게든 전달하려다 보니
그래서 내가 하려는 말을 상대방에게 도착하게 하기까지는 참 쉬운데, 그걸 진심으로 듣고, 이해하게 만들기는 정말 어려운 거죠. 상대방에게는 내가 하려는 말도 수많은 정보 중에 하나, 다른 말로 노이즈처럼 들리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든 내 말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략을 세워야 해요. 수많은 정보 중에 상대방이 하필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을만한 요소를 심어놓아야 하는 거죠. 아주 웃기거나,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이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원래 하려는 말을 전달하기 위해 약간의 장치나 포장을 해야 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마케팅이란 게 이런 거죠. 결국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거예요.
문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상대방이 듣게 하기 위해 포장을 하다 보니, 그 포장 때문에 내가 원래 하려는 말의 본질이 왜곡되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내가 하려는 말의 핵심은 듣지 않고, 호기심 유발용 포장에만 관심을 갖는 거죠. 왜냐면 그게 더 재밌으니까요. 영화 주인공 디비아스키가 TV에 나와 분노하면서 혜성 때문에 우리 모두가 곧 죽게 될 거라고 말할 때를 봐도 그래요. 그녀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혜성이 지구로 돌진하고 있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 모두는 곧 죽게 될 거라는 얘기였지만 사람들은 그 말에는 관심이 없었죠. 결국 그녀는 어떻게든 그녀의 의도를 전달하고 싶어서 분노를 담아 고성을 질렀는데 이제야 그 모습이 재밌어진 사람들은 그것만 기억하게 되죠. SNS에는 그녀의 모습을 희화화한 밈이 돌게 되고요.
왜 이렇게 남의 말을 안 들을까?
혜성 때문에 곧 우리 모두가 죽게 된다는, 어쩌면 살면서 가장 중요한 얘기도 사람들에게 전달이 잘 안 되는데 그보다 덜 중요한 다른 문제들은 오죽하겠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안 들을까요? 그건 아마도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인 거 같아요. 그리고 요즘 우리가 매일처럼 사용하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이런 경향을 더 강화시켜 주죠. 어떤 콘텐츠에 대해 내가 한 번 관심사를 드러내면, 알고리즘이 그와 관련된 정보를 나에게 계속 제공해 주고, 그러면 그럴수록 처음의 관심사에 대한 내 생각은 점점 더 강해지죠. 이런 과정을 보면, 요즘 시대에 인격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만들어가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아요.
이미 강해져 버린 내 생각과 반하는 의견이나 정보가 있을 때,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가 않아요.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오히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을 얘기하는 사람들을 나를 선동하기 위한 적으로 간주하기가 쉽죠. 그러면 내 생각을 더 보호하기가 쉬우니까요. 그렇게 이쪽 편과 저쪽 편, 편 가르기가 시작되는 거죠. 일단 이렇게 편을 나눠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각 편의 스토리를 짜는 것은 굉장히 쉬워져요. 맘에 안 들거나 이해 안 되는 말이 있으면, 저건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다라고 해버리면 쉽죠. 영화 속 사람들이 ‘룩업’과 ‘돈룩업’의 두 진영으로 나뉘는 것처럼 말이죠. 사실 중요한 건 '혜성이 떨어지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였는데, 이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보다 '이걸로 누가 이득을 보느냐, 일단 우리 편을 지켜야 한다'가 중요한 게 되어버린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혜성 문제는 점점 사라지고, 그냥 상대방 말이 듣기 싫어지는, 본질에 대한 망각의 시간이 열리는 거죠. 그런데 잘 보면 이런 경우는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재밌는 게 뭐냐면, 흔히 사람들이 ‘이건 정치적인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들이 대개 그런 것들이라는 거죠.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할까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 말에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갖게 하려면 말을 포장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원래 하려던 말보단 포장에만 관심이 있거나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을 하면 나를 적으로 간주해서 내 말을 다른 식으로 왜곡해 버리는 상황인데 말이죠. 이건 정말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난제인 거 같아요. 근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게, 시간이 지날수록 갈라진 두 편들, 혹은 더 많은 편들 사이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지는 거 같기 때문이죠. 상대방을 점점 더 이해하기 싫어하면서요. 영화에서는 감독도 답이 없었는지 혹은 이러다간 큰 일 난다는 메시지는 통쾌하게 날리고 싶었는지 지구의 멸망으로 끝이 나더라고요. 결국 영화가 하고 싶었던 말은 ‘정말 이러다 우리 다 죽어’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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