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존재
대지가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아마도 일본인들은 생활처럼 겪는 지진의 경험 속에서 그런 의지와 힘을 느끼나 보다. 자신의 삶을 집어삼킬 만큼 거대하고 무서운 힘에 떨고 난 후에야 그것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것을 보면 사람은 자연에 대해 참 무관심하다. 특히 요즘처럼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이 주는 한계를 많이 극복하게 된 시대를 살게 되면서 그런 무관심은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그러다 한 번씩 역시나 자연 앞에 미약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되고 반성하지만, 그것이 자주 반복되지 않은 이상 우리는 쉽게 자연의 존재와 그 힘을 잊게 된다. 마치 공기가 늘 있는 것처럼, 그래서 크게 의미 있지 않은 것처럼 느끼게 된다.
기억의 시작
우리의 기억에는 늘 배경이 있다. 과거의 이벤트가 일어났던 장소가 있다. 그리고 그 장소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는 기억을 형성하는데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기억은 대개 이미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때의 냄새, 소리, 온도와 같은 촉감이 추가된다.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대지 위에 우리의 기억이 심기면, 그 대지, 그 장소는 특별한 곳이 된다. 같은 장소여도 나만의 것이 되어서 다른 사람의 그것과 완벽하게 구분이 된다. 집의 본질이 기억을 품는 장소인 것과 같다('나의 집은 어디인가' 리뷰로부터). 결국 대지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기억을 저장해 주는, 마치 스즈메가 자신의 보물상자를 땅에 묻어 보관했던 것처럼, 기억을 보관해 주는 가장 안정한 장소이다.
함께 사는 것
영화 속에서 마그마처럼 보이는 것이 대지의 분노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스즈메는 그것을 억누르려고 했다. 대지의 의지를 사람이 눌러 잠재우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은 분노가 아니라 단지 대지가 가지고 있는 힘의 흐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지는 자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모든 자연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대지 위에 사는 인간은 그곳에서 기억을 만들고 그것을 자신이 사는 장소에 묻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그 기억들을 잊으면서 자신을 잊기도 한다. 어렸을 때 생각했던 꿈, 상상력, 순수함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있던 모든 장소에 남겨놓은 내 기억들을 다시 본다면, 지금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그것이 좋은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를 반추해 본다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결국 대지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한 방법은 그곳에 묻혀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되새겨보는 것이라고, 영화에서는 말한다. 그것이 살아있는 대지에 살아있는 인간이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인 것처럼 말한다. 그것이 대지와 인간, 둘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아마도 인간은 너무나 자기중심적인 동물이라서 본인과 관련된 기억이 없이는 대지나 자연의 존재를, 마치 공기처럼,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반대로 대지에, 자연에 가까이 있을 때면, 어딘가에 있던 내 기억이 좀 더 살아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이 더 많이 쌓일수록 자연의 가치가 더 크게 다가오나 보다 싶다. 그러고 보면,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단지 나에게 중요한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게 시작이자 전부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어떤 기억에든, 그곳에는 대지와 자연이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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