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 편향
확증 편향은 '콩깍지가 씌었다'는 뜻이다. 편향은 영어로는 bias인데, 편견, 기울어진 시각, 객관적이지 못한 판단 같은 것을 뜻한다. '확증 편향'은 자신이 어떤 것을 선택하고 난 이후에, 선택한 것을 편드는 쪽으로 생긴 편견을 뜻한다.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입장이 될 수 없다.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은 다 좋아 보인다. 주변에서는 보이는 단점들이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점이 좋아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기도 했지만,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됐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많은 점들이 좋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괜찮은 주식 종목을 발견하면, 그 회사는 일단 좋아 보인다. 재무적으로도 탄탄해 보이고, CEO는 신뢰할만한 사람처럼 보이고, 이 회사만의 경제적 해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미래 경제를 주도할 것처럼 보인다. 얼른 이 주식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고, 기회를 놓치면 금방 가격이 올라버릴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알기 전에 얼른 내 포트폴리오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든다.
편향이 끝나고 난 뒤
실컷 확증 편향에 취해 산 뒤에, 문득 그것이 편향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뒤, 그러니까 '콩깍지가 벗겨졌을 때'가 되면, 그동안의 행동들이 민망하고 후회가 된다. 그동안 말렸던 사람들이 이해가 되고, 어떻게 그렇게 가까운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대개 이런 후회와 민망함은 사랑의 시간에 비례한다. 편향에 갇혀있던 시간 말이다.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시간, 나보다 상대방을 중심에 두었던 시간이다. 너무 사랑해서 온전히 마음을 주었다면, 내가 빠졌던 편향으로부터 돌아올 길은 더욱 멀다.
주식 세계에서 확증 편향의 결과는 숫자로 말해준다. 처참한 손해. 잘못된 결정을 내렸으면, 일찍이라도 빠져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확증에 빠져있던 기간만큼, 역시나 사랑에 빠져있던 기간만큼의 음수가 내가 빠져있었던 편향의 정도를 정량적으로 정확하게 말해준다. 이때 선택은 두 가지다. 그 숫자를 보고 담담히 그동안 자신이 중심을 잃었음을 인정하거나, 내가 틀릴 리가 없다며 상황이 반전되기를 기다리거나. 후자는 가치투자자이거나 지독한 편향성 고집쟁이다. 내가 둘 중 어떤 사람일지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심리적 편향을 피하는 법
강환국 작가는 퀀트 투자 방법을 이용하는 투자가이다. 그는 인간은 심리적인 편향이 있기 때문에 투자를 망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판단을 하지 않는 원숭이보다 오히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퀀트 투자 책에서 초반부터 각종 편향의 종류에 대해 망라하는 것도, 우리는 그런 편향들에 자유롭지 않은 존재임을 자각하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심리적인 편향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객관적인 숫자의 경향성에 의존할 수 있는 퀀트 투자를 지향한다. 인간의 심리가 문제라면 그 심리, 즉 편향을 데이터를 통해 극복하는 것이다.
워런 버핏은 자신에게는 찰리 멍거가 있다고 했다. 가치투자자인 자신이 좋은 기업을 발견하고 투자를 위한 기업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그 기업 분석에 대한 찰리 멍거의 의견을 듣는 것이 자신의 투자 성공 비결이라고 말한다. 찰리 멍거는 워런 버핏의 투자 평생을 같이한 파트너인데, 그는 워런 버핏에게 매번 No라고 말한다고 한다. 워런 버핏은 찰리 멍거를 설득하기 위해 더욱 집요하게 기업 분석에 파고들고, 그러면 기업의 가치 판단에서 정확성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워런 버핏의 방법이 더 낭만적으로 보이긴 하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만은 않은 것이, 이를 위해서는 나와 비슷한 수준 혹은 나보다 나은 수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파트너와 그가 말하는 수없는 No에 기분 상하지 않을 나의 담담함이 필요하다. No라는 말은 일단 듣기에 별로이기 때문이다. 담담함은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쉬운 덕목인데, 없는 사람에게는 갖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여하튼 두 가지가 만족되었다면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내가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내 깊은 생각의 결과물에 대해 그만큼 깊은 의견을 얘기해 주는 것 말이다. 내가 가장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고 토론하는 기분 말이다.
누군가 찰리 멍거에게 절대 잃지 않을 투자 종목을 알려달라고 질문했더니, 찰리 멍거는 '당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 말했다고 한다. 시간이 가도, 어떤 외부 환경에서도 가치를 잃지 않는 종목은 자신 밖에 없다는 우문현답에 한동안 멍하니 생각이 멈췄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에 대한 확증 편향 때문에 나를 실제보다 더 좋아하지는 않았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실제의 나와 생각되는 내가 너무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싫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방법은 두 가지인데, 내가 확증 편향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 되거나, 워런 버핏에게 찰리 멍거처럼 수십 년 동안 No라고 말하되 꾸준히 곁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을 두어서 그의 의견을 내가 귀담아듣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추측건대, 전자가 후자의 출발점이지 싶다. 아마도 워런 버핏이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어서 찰리 멍거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 것 같다. 이게 심리적 편향을 피하는 낭만적인 방법을 얻는 시작점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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