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끝
그날, 그들이 판 상품을 산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배신감, 분노와 함께 다가오는 건, ‘이제 어떡하지’라는 절망이었을 것이다. 좋은 상품을 헐값에 샀다고 좋아했다가 머지않아 그것이 굉장히 부실하고, 곧 휴지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이런 걸 나에게 팔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관계가 있는데 이래도 되는 건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상품을 파는 사람들’의 수장인 주인공, 샘 역시 이 점을 우려했었다. 기업의 생명과 같은 고객과의 관계를 저버리는 것, 그것이 그 판매 행위를 할지 말지 결정할 때 가장 큰 고민 포인트였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고민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가지고 있던 관계를 그렇게 철저하게 배신하지 않는다. 그동안 쌓아온 관계에 대한 애정이나 앞으로 그 관계에 대해 가지는 기대가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그 관계가 가지고 있는 최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확신이 들면, 그러면 어떻게 될까. 관계의 본질이 오직 이익의 추구에만 관련이 있다면, 바로 지금 이 순간, 이익 실현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테면, 청산 같은 것이다.
관계의 이용
관계의 본질이 오직 이익 추구에만 있을 수 있을까. 이 말은 좀 어색하고, 비인간적으로 들리지만, 어떤 관계의 시작과 목적이 그렇다면, 애초에 인간적인 기대를 이 관계에 담는 순간부터, 이 관계에 감정이 관여하는 순간부터, 이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할 지에 대한 방향이 잘못된 쪽으로 흐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관계에서는 철저하게 감정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대응하는 게, 그 목적을 실현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렇지만 재밌는 건,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많은 관계에서 감정이나 인간적인 속성을 의도적으로 개입시킨다는 점이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말이다. ‘당신이니까 이 정보를 주는 거야’, ‘저니까 이 만큼 할인해 주는 겁니다’, ‘남들에게 안 팔고 당신을 위해 이 상품을 지켜놨습니다. 기회를 잡으세요’ ‘그동안 관계가 있는데, 조금 더 할인해 주세요’ ‘원래 이러면 안 되는데 고객님이니까, 좀 더 할인해 드릴게요’. 상품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인간적인 스토리, 그동안 관계의 히스토리 같은 것을,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처럼 이용한다. 사실은 그런 스토리, 히스토리가 이익 관계의 본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인간적인, 감정적인 설득의 표현이 단순히 설득을 위한 전략적인 도구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결국 어떤 말, 표현이 오고 가더라도 판매와 구매의 본질이 결국 이익추구임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단지 판매, 구매 행위 역시 사람을 통해 진행되는 것이 때문에, 인간성을 이용한 설득을 부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것임을 기억할 것이다.
관계의 본질
이익관계에서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 질까. 판매와 구매가 두 번 이상 일어날 때이다. 이번 이후 다음이 또 있을 수 있다는 예상과 기대를 할 때이다. 이럴 때, 단순히 판매와 구매, 각자의 최대 이익 추구를 위한 단발적인 ‘이벤트’는 앞으로도 그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잠재성을 내재한 ‘관계’가 된다. 잠깐 있다가 떠날 휴양지의 식당에서는 관계를 만들 수 없지만, 반복해서 갈 수 있는 동네 식당에서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앞서 말한 스토리와 히스토리가 개입되는 것은 바로 이 ‘관계’가 만들어지는 지점에서다. 그리고 이 관계를 이용하고, 이 관계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브랜딩’이라고 부른다. 사고 싶은 사람들이 상품에 대한 필요뿐만 아니라 호감을 갖게 하고, 팔고 싶은 사람들은 상품의 물리적인 가치 이상의 스토리를 만들어 상품을 연속적인 관심의 선 상에 놓는 것이다. 지속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지속적인 관계에서 ‘인간성’이라는 것은 굉장히 유용한 수단이다.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인 유대를 일으켜야 관계의 결속이 강해진다.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관계에서 인간성을 배제하고 합리적인 생각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인간성, 감정을 설득의 수단으로 이미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 관계의 유대를 인간성이 어느 정도 단단히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설득은 인간만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다. 인간성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설득이 아니라 일종의 함수 수식 같은 것이 될 것이다. AI는 어떤 판단을 기존에 입력된 공식에 대입한 다음 거기서 나오는 답을 도출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것은 입장을 정하고, 해석이 필요한 ‘판단’이 아니라, 이미 나오기로 결정된 것이 나오는 ‘도출’이다. AI에게는 기존 입력된 공식이 유지되는 이상, 이전 계산이 다음 계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이 계산은 백 번을, 천 번을 반복해도 ‘관계’가 될 수 없다.
그날 그들은 설득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알았다. 인간만이 설득할 수 있고, 인간만이 설득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들이 그동안 만들어 온 관계의 힘을 알았고, 그래서 그들의 고객이 방심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들이 이용했던 전략적인 수단, 인간성에 그들도 잠시 취해 정말 그래도 되는지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계의 본질은 놓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관계가 끝이 보일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관계의 본질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관계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 애정을 쏟는데, 그 애정은 가끔 사람들이 냉정함을 잃게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사회에서 우리는, 그 냉정함을 잃었을 때, 그것을 약점 삼아 상대로부터 이익을 갈취하는 행위에 대해 비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그 냉정함을 잃은 사람들이 비난을 받게 된다. 세상의 현상들은 스펙트럼처럼 일어나는데, 이 영화는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극단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 극단에서 관계의 본질은 비인간적인 것이다.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말이다. 어떤 관계에서는 늘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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