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오랫동안 한다는 것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돈이 됐든, 명예가 됐든, 처음의 각오를 잊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나에게 중요한 것이어야만 효과가 있다. 오랫동안 어떤 일을 지속하면서 겪게 되는 모든 힘든 과정을 감내하도록 의지를 줄 만큼 중요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일을 수십 년 동안 지속해 온 것에 대한 보상이 ‘나에 관한 것’이 아님에도, 오랫동안 자신의 신념대로 어떤 일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이를테면, 환경운동가들이나 난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보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지치지 않고 한 가지 문제를 향해 지속적으로 달려가게 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그들이 그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어떤 일에 대한 동기로 삼을 때, 그들에게는 자신의 의지를 지탱해 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는 '믿음'일 것이다.
평범이 비범으로 바뀌는 과정
주인공 롭이 처음부터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냥 보통 변호사였다. 그러다 어떤 일이 찾아왔고, 일상의 패턴대로 그것을 무시했다. 그런데 약간의 호기심이 들었고, 약간 파헤쳐봤다. 여기까지는 지극히 평범하다. 파헤쳐보니 좀 더 호기심이 들었고, 이제는 제대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제대로 알아보다 보니 수상한 것이 발견됐다. 그런데 수상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시점부터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다.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다. 더 깊이 알아볼수록 그가 하는 일을 말리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그럴수록 더 알아보고 싶은 오기가 생긴다. 여기까지도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행동 범위 안에 들어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투성이고, 일의 진전을 위해서는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다. 시간이 부족하고, 이것 말고 다른 것에 신경 쓸 시간이 전혀 없다. 오직 이 일에만 파묻혀 있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가족에게서도 원망을 듣는다. 가족은 집에 신경 쓰지 않는 롭이 야속하다. 롭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어쩔 수는 없다. 이제 롭에게 그가 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됐고, 이것의 영향은 의뢰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닌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그는 평범의 범위를 넘어가기 시작했다.
롭은 제대로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고, 그 과정에서 건강, 연봉, 가족과의 관계 등 많은 것을 잃었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확신이 강했으므로 그 상실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는 열심히 싸웠고 드디어 이겼다. 이렇게 하는데 7년이 걸렸다. 그는 비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위대함을 만드는 시간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무언가를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달려온 시간 이후,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는 시간이 왔다. 이 시간의 처음에는, 기다리면 어떤 진전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주변의 응원도 있고, 이제껏 해온 것에 대한 믿음과 앞으로 일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3년, 5년, 시간이 지날수록 롭과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은 지쳐갔다. 롭도 지쳐갔다.
어쩌면 어떤 목표를 향해 해야 할 일을 정하고, 그 일을 해내기 위해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는 시간들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몸이 힘든 시간들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간은, 바로 그 기다림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떤 것을 위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그 시간만큼 나의 일부를 쏟아붓는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힘든 이유는,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처음에 했던 생각, 각오들이 점점 잊히기 때문이다. 점점 지치게 되고, 그러면서 그동안의 긴 시간을 보냈던 나의 노력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실 그동안의 나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확실한 성과가 없는 일을 시작하는 것에 경계심이 있다. 그런 것에 나의 시간, 나의 일부를 할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몇 년만 버티면, 그 이후에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을 경우,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어떤 것을 위해 그 몇 년의 시간을 쏟아부었음에도,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을 때와 비교했을 때 말이다. 그리고 그 보다 더 힘든 경우는, 어떤 것을 위해 몇 년의 시간을 이미 쏟아부었는데, 앞으로 얼마의 시간을 더 쏟아부어야 할지 힌트조차 없을 때이다. 이럴 때도 처음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지난한 시간 동안 처음에 했던 각오를 잊지 않기 위해, 롭은 얼마나 많은 외로움을 견뎌야 했을까. 나에게 대단하게 보였던 것은, 일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원인과 결과를 파악해서, 결국 모두를 설득할 수 있었던 비범한 능력보다, 얼마큼 기다려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그의 인내이다. 그 길었던 시간에 대한 버텨냄이다. 이것이 결국 그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오랜 시간을 버텨온 그 위대함에 어느 정도 빚을 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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