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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나의 집은 어디인가] : 집의 시작

by 리질리언스 2023. 1. 23.

원제는 Flee이다. 직역하면 ‘피난’ 정도가 된다. 영화의 지금 제목만큼, 주인공 아민의 여정이 집을 찾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살던 아프가니스탄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순간부터, 그는 늘 '여기만 아니면 되는 곳'에 있었다. '집’으로 표현되는, 어떤 목적 지점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떠남’이 더 중요했다. 오히려 원하는 것은 집이 아니어도 됐다. 집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주는 안정감이 필요했다.

집과 기억

집은 감성적이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많은 기억을 담고 있는 터전이자 기억을 되살려 주는 매개체이다. 모델하우스가 멋지긴 하지만, 진짜 ‘집 같은’ 느낌을 줄 수 없고, 뭔가 허전한 것은 나의 기억이 묻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집구석구석에는 내 경험의 흔적들이 남아 있어야 하고, 그래서 ‘집 다움’은 짧은 순간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형태의 집은 짓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것으로는 진짜 집이 되기에 부족하다. 집은 시간을 들여 나와 함께 어느 정도 자란 후에야 진짜 집처럼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집 다움’을 만들어주는 것은 물리적인 형체보다 오히려 거기에 묻어있는 기억일 때가 있다. ‘집’ 하면 떠오르는 포근함과 안정감의 많은 부분은 가족과 사람에 대한 기억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집의 정의를 바꾸기도 한다.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면 집은 외로운 공간으로 기억된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집의 느낌은 그 반대일 것이다. 물론 어떤 기억이 영원하지 않듯, 그것으로부터 영향받은 집의 정의도 계속 바뀔 수는 있지만 말이다.

아민이, 남자 친구가 소개해 준 집을 처음 봤을 때, 그토록 원하던 정착을 할 수 있었음에도 주저했던 이유는 망명했던 시절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기억이 바뀌지 않는 이상, 물리적인 집 만으로 그가 원했던 안정감과 포근함을 얻을 수는 없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 기억에는 오랜 시간이 망명을 하며 몸에 배어 버린, 사람들에 대한 경계와 나의 지금을 만들어 준 사람들의 희생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감이 묻어 있다. 그래서 그는 아직 정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집과 사람

아민은 기억 속에서 가족을 죽여야 했다. 실제로 그의 가족은 살아 있었지만, 그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기억 속에서는 죽여야 했다. 그런데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이후, 기억에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이것은 실제로 가족을 잃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기억은 그것을 다시 꺼내어 얘기해 보면서 계속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인데, 아무에게도 가족의 존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가족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그 만들어진 이야기는 너무도 있을 법한 일이어서 그것은 자신의 원래 기억을 대체하기에 충분히 현실적이었다. 그렇게 아민은 기억 속에서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을 붙들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아민이 정착할 만한 집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기억 속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들을 두고 혼자서 행복하게 정착하는 게 미안해서가 아니었을까. 혹은 정착해도 된다는 것은 자기를 위해 이루어진, 타인의 희생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다 한 후에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결국 그에게 집은 기억의 회복과 책임의 완수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가지고, 정착을 하는 것은, 그렇게 어딘가에 앵커링 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내 몸이 어딘가에 거주한다는 것을 넘어, 내 새로운 기억을 고정시킬 준비가 됐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고정을 위해서는 마음의 빚을 청산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 대상이 나이든 나를 도운 타인이든 말이다.

집과 정체성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치료해야 되는 것일 수 있다는 아민의 생각은 집에 대한 그의 불안감과 닮아있다. 그것을 밝힐 경우, 가족들로부터 부정당할 수도 있을 거라는 불안감은 그가 기억 속에서 억지로 가족을 죽여야 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부정하는 느낌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 한 곳에 정착할 수 없다고 아민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형이 아무렇지 않게 아민의 고민을 받아들여 줬을 때, 그리고 그것이 문제나 병이 아니라고 인정해 주었을 때, 아민의 마음속에는 작은 집 하나가 만들어졌을 것 같다. 스스로를 괴롭혔던 마음의 빚을 하나 청산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그 마음으로부터는 도망가지 않아 된다는 안정감을 느꼈을 것 같다.

집을 만드는 시작은 어떤 것으로부터도 도망가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있는 것인가 보다. 그 상태에서 나는 내가 속한 사회, 가족과의 관계를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런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곧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되게 쉽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는 무엇을 해서든 나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내 주변, 내 가족, 내 사회, 내 관계가 나를 증명해주지 않으니 말이다. 아민이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자신의 성공이 타인을 향한 나의 증명이 아니어도 되니 다행이다. 그것 말고도 자신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관계들이 하나둘 만들어져서 다행이다. 어쩌면 집의 시작은 바로 여기인 것 같다. 일단 마음속에 작은 집을 하나 만들었으니, 아민의 집이 점점 더 크고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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